남도 문화재

양산동의 지명유래

월명실 2013. 6. 15. 09:24

 

[양산동 - 지명유래]

유래
양산동 전경

양산동동전경

본래 광주군 석제면(石堤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지리 내촌과 갑마보면의 거하리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양산리라 해서 본촌(지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되어 1998년 9월 21일 건국동의 관할이 되었다.
양산동에는 안들메(내촌)와 그 위쪽 상촌이 있고 으뜸마을인 양지가 있다.

소지명
  • 내촌, 안들메 : 양산동에 있는 마을. 연제동의 들메 안쪽이 됨
  • 상촌 : 내촌 위에 있는 마을
  • 양지 : 양산리에서 으뜸가는 마을. 양지쪽임

    [양산동 - 유물유적]

    비각
    양산동 정윤길정려

    <양산동 정윤길정려>

    * 정윤길 정려(鄭潤吉 旌閭) : 양지마을, 1859년 건립

    정윤길 정려는 송월당 정윤길(松月堂 鄭潤吉)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에서 1859년에 명정(命旌)하여 건립되었다. 건물은 목조 기와로서 길이 420㎝×210㎝이며 소슬대문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양지마을에 위치해 있다. 정윤길 정려는 삼호정과 만석재의 대문을 겸하고 있으며 정려기(旌閭記)는 볼 수 없다.
    효자 정윤길(1723-1802)은 문절공(文節公)의 11대손이며 1723년 오치에서 출생하였다. 1773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국학관에 들어간 그는 학문과 효행이 탁월하여 국가에서 사헌부지평을 증직(贈職)하고 명정(命旌)하였다.

    * 정재요 밀양박씨 효열각(鄭在堯密陽朴氏孝烈閣) :
      양지마을, 1905년 건립

    양산동 정재요밀양박씨 효열각

    <양산동 정재요밀양박씨 효열각>


    정재요 밀양박씨 효열각은 양지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정윤길 정려와 가까이 있다. 효열각은 목조 기와집으로서 530㎝×400㎝의 사방 한칸으로 되어 있으며 효자 정재요와 열녀 밀양 박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1905년 국가에서 명정(命旌)하였다.
    효자 정재요는 선대(先代)에서부터 효자가 있어 이를 본보기로 하여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섬기기를 잘하였다. 부친상을 당하여 3년을 슬픔에 잠겨 성묘예절을 지성으로 하였으나 이로 인해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에 열녀 밀양 박씨가 남편을 백방으로 구하려 하였으나 임종에 이르러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3일을 연명케 한 후 부인도 세상을 뜨니 부효부열(夫孝婦烈)이라 정하여 국가에서 명정하였다. 효열각 안에는 기우만의 정려기(旌閭記)가 있다.

    재각
    양산동 만석재와 삼호정

    <양산동 만석재와삼호정>

    1. 삼호정(三湖亭) : 양지마을, 연대미상(1917년 중건)

    양산동 양지마을 도로가에 위치해 있는 하동 정씨의 정자로서, 조선조 세종 때의 문신인 문절공 정수충(文節公 鄭守忠)의 후손 석보 정병현(石圃 鄭丙鉉)에 의해 건립된 만년 휴식처이다.
    정병현은 한말 10여 년 간 광주향교전교(光州鄕校典敎)를 역임하면서 유교의 도(道)를 진흥시키는데 진력(盡力)을 다하였으며, 시문(詩文)에 능했던 선비였다.

    정병현은 젊은 시절 유랑지였던 서호(西湖)·남호(南湖)와 이웃의 석호(石湖) 3개의 호수를 잊지 않기 위해 정자의 이름을 삼호(三湖)라 하였다.
    처음 지어졌던 삼호정은 장소도 협소하고 지붕이 띠집으로 되어 있는 초라한 모습이었는데 정병현의 아들인 만석 정해붕(晩石 鄭海鵬)이 정자의 주변을 넓히고 지붕도 기와로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삼호정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아들에 의한 중건은 1917년에 이루어졌다.
    삼호정은 만석재(晩石齋)와 한 건물로 ㄱ자형의 건물중 ‘ㅡ’자 부분은 만석재, ‘ㅣ’자 부분은 삼호정으로 되어있는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삼호정은 2칸 건물로서 그 구조자체가 정자용도(用途)로 꾸며져 방이 없는 마루로 트여 있을 뿐 아니라 정명(亭名) 및 정기(亭記) 등의 관계 문자(文字)가 모두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 정자의 후면(後面)을 제외한 좌우전면(左右前面)이 모두 벽돌 및 토담으로 둘러있고 오르내리는 뜰 계단이 화강석으로 되어 있으며 건립당시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가 정자 정면에 서 있다.

    2. 만석재(晩石齋) : 양지마을, 1917년

    만석재는 삼호정(三湖亭), 정윤길 정려(鄭潤吉 旌閭)와 함께 양산동 양지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정씨재실(鄭氏齋室)이다.
    건물은 화강석 외벌대 기단 위에 정평주초를 놓고 원주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장혀와 굴도리 만으로 가구하였고 내부에는 대들보 위에 종보를 보아지와 함께 결구하여 그 위에 도리를 얹는 5량집으로 되어 있다.
    마루는 귀틀에 의한 툇마루로서 인방과 마루 사이에는 머름장식을 하였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ㄱ’자형 집으로 되어 있으나 좌측에는 삼호정으로 쓰이고 있다. 창호는 좌 1칸을 머름으로 하인방 부분을 장식하고 봉창을 달았으며 중앙 1칸은 들쇠에 의한 4분합문으로서 띠살창으로 되어있다.
    대문은 평3문으로 되어 있는 듯 하나 대문 자체가 정윤길 생가로써 대문을 겸하고 있다. 좌측 삼호정과 제당(齊室)은 판문(板門)으로 차단하였으나 건물 뒷편에도 다양한 창살의 봉창을 내어 공기순환이 비교적 잘 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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