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문화재

매곡동의 지명유래

월명실 2013. 6. 15. 09:19

 

[매곡동 - 지명유래]

유래
매곡동전경

매곡동동전경

매곡동은 어매(於梅)와 봉곡(鳳谷)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어매마을 뒷동산은 매화가 땅에 떨어지는 형국과 같다고 ‘매화낙짓등’이라 부른다.
조선후기 이 지역은 광주군 와지면(蛙只面)에 속했다가 서방면에 편입되었고 1955년에는 광주시에 편입되었고 1957년 동(洞)제 실시에 따라 리(里)를 동(洞)으로 고치고, 복스럽고 길한 징조가 있는 산에 안겨있다고 해서 매곡, 오치, 삼각동을 합해 서산동이라 하였다.
오동나무가 울창한 고개 너머 한적한 근교농촌이던 곳에 1979년 전남공무원교육원이 옮겨오고 1981년 국립광주박물관이 개관되었고 여러 아파트와 함께 전라남도교육위원회 등 각종 공공기관까지 이주, 신설되어 번화하게 되었다.

소지명
  • 백련동 : 중외동과 하백에 걸쳐 있는 마을
  • 어매 : 매곡동에서 으뜸가는 마을
  • 중외동 : 하백 위쪽에 있는 마을
  • 하백 : 어매 서남쪽에 있는 마을
  • 소탕고개 : 하백 남쪽에서 신룡동으로 가는 고개
  • 우동골 : 어매 북쪽의 골짜기
  • 갱잇들 : 어매 동쪽으로 바닥이 깊음.
  • 냄비등 : 어매 북쪽에 있는 등성이로 냄비처럼 생겼음.
  • 초당등 : 어매 북쪽에 있는 등성이
  • 매화낙지등 : 어매 북쪽에 있는 등성이로 매화가 땅에 떨어지는 형의 명당이 있다 함.
  • 동자봉 : 매화낙지등 북쪽에 있는 산.
  • 여불봉 : 우동골 위에 있는 산.
  • 질가시암 : 어매 앞 길가에 있는 샘으로 얼음처럼 찬물이며 맛이 좋음.
  • 참시암골 : 중외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참시암에 있음.
  • 큼까끔(큼봉) : 중외동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120m

[매곡동 - 유물유적]

전통가옥
매곡동 김용학가옥

<매곡동 김용학가옥>

1) 김용학 가옥 : 매곡동 306(하백길 43), 민속자료 제3호, 1934년

1917년에서 1934년에 걸쳐 지어진 김용학 가옥은 1989년 3월 20일에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김용학 가옥은 살림집과 정자가 언덕 위에 조화롭게 세워져 있는 1900년대 초의 민간원림이다. 건물의 배치는 동북쪽이 낮고 서남쪽이 높은 지형을 살려 낮은 곳에 사랑채와 안채를 동서 중심축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주거공간의 왼쪽에 연못과 하은정을, 그 왼쪽 뒤에는 연파정을 역시 동향으로 배치하여 자연과 어울리도록 하였다.
사랑채(백암정사)의 평면 형태는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는데, 뒷부분을 손질하여 마루와 부엌을 증축하였다. 대청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왼쪽 방 끝에 빈칸의 마루가 있어 남쪽으로 터진 담장 사이로 연못을 볼 수 있다.
하은정과 연파정은 1933년 지은 것으로 하은정은 정면 5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이며, 연파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역시 팔작지붕이다. 연파정은 원래 김용학의 아버지 김희수가 할아버지 김영덕을 위해 지었는데, 김용학이 아버지를 위해 하은정을 지으면서 인부들의 잘못으로 불이나 하은정과 함께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 두 건물은 안채 마당에서 돌계단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100년 생의 벚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연파정은 정자 사면에 오동나무 마루를 덧붙여 덧문을 달아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하였다. 두 건물 모두 처마의 곡선이 중앙으로부터 반전을 이루어 조로와 후림이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후일에 증축한 안채가 부자연스럽다.

2) 백암정사(白菴精舍)

백암정사는 하은정, 연파정의 사랑채로써 건물은 화강석 기단 위에 정평주초를 놓고 원추의 기둥을 세웠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정면에 돌쇠와 신발돌을 각 칸마다 두었고, 중앙은 대청과 좌우에 서재 다락이 딸린 온돌방을 배치하였으며 대문은 소슬대문으로 되어있다

매곡동 연파정

<매곡동 연파정>

3)연파정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정자의 사면에는 덧문을 달아 바람과 비가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곁에는 정원, 연못 등이 잘 꾸며져 보존 관리되고 있다. 정자의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연파정 내에는 시(詩), 기(記) 등의 미처 목판에 인쇄하지 않은 많은 시문이 종이에 쓰여진 채로 남아있다. 이 글들은 모두 『光山金氏深山軍守公派世蹟(광산김씨심산군수공파세적)』이란 책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의 보존 상태 또한 양호하다.

☞ 교통편
시내버스 55을 타고 빅마트에서 내려 안내판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있다.



매곡동 하은정

<매곡동 하은정>

4)하은정(荷隱亭)

하은정은 하은(荷隱) 김희수(金喜洙)의 아들 김용학(金容鶴)에 의해 1934년에 창건되었다. 김희수는 자(字)가 창술(昌述), 호(號)는 하은(荷隱)이며 1891년에 출생하여 1929년 39세에 죽었다. 고광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스승인 고광선의 봉산정사를 짓는데 앞장섰으며, 친우 친척 중 곤궁한 자를 널리 보살펴줌으로써 덕망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매곡동 - 민속문화]

당산제

망월동 분토마을 당산나무

매곡동 중외당산나무

400여 년 전에 밀양 박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성촌된 중외마을은 전라남도 교육청 뒷편에 위치하고 현재 50여 호가 농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이곳에는 버드나무가 5곳에 있었다 하여 예전에는 오류동(五柳洞)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이곳의 당산제는 오래전에 사라지고 마을주민들에 의해 구전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마을 입구 도로 중앙에 당산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원조 할아버지당산의 손자인데 마을주민들은 이 나무를 <당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람들이 당산나무의 가지를 꺾지 못하게 하는데 이는 나무가지를 꺾으면 가지를 꺾은 집에서는 나쁜 일이 생기고 좋지 못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라 한다. 당산제는 사라졌으나 마을주민들은 아직도 당산의 영험함을 믿기 때문인지 지금도 마을 주민 중에 객사를 하거나 교통사고로 죽으면 상여는 당산나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로 돌아가게 하였다. 몇 년 전 마을에 궂은 일이 있어 형식적으로 제를 한번 모셨다

* 일심계

이곳에는 일심계라고 하는 모임이 있는데 하백, 어매, 중외, 오치, 삼각, 가작마을의 주민들로 구성되어진 모임이다. 일심계는 위친계와 비슷한 성격으로 예전에는 돼지계라고 불리워졌는데 이것은 자식의 혼례 때 돼지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계는 상부상조와 계원의 애경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계원 중 한 분이 작고하면 강제성은 없지만 하얀 소복을 같이 입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즈음하여 마당밟기를 정기적으로 했었고 여기서 거두어진 돈은 마을을 위한 공동기금으로 사용되었다.

* 제보 : 이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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