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문화재

삼각동의 지명유래

월명실 2013. 6. 15. 09:21

 

[삼각동 - 지명유래]

유래
삼각동 전경

삼각동동전경

대략 300여 년 전에 성촌된 이 마을은 예로부터 논농사와 밭농사를 주업으로 살아오고 있다.
삼각산 서남쪽 등성이를 따라서 월산, 삼각, 가재기 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북으로 초목골, 동으로 칙택골과 수랑골, 남으로 고문곳등과 대행골에 둘러싸여 있는 삼각마을은 서면의 번짓들, 청룡들을 생활 터전으로 삼았다. 어귀에 선바우가 우뚝 서 있고, 사기점이 있는 점촌인 월산 북녘에는 순산골, 철툇골이 있다. 월산마을에서는 장운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장등재가 있다.

본래 광주군 오치면 지역으로서 삼각산 밑에 위치하므로 삼각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산리(月山里), 외촌(外村)리, 가작(佳作)리를 병합하여 삼각리라 해서 서방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7월 1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서산동회의 관할이 되었으며, 전쟁 직후인 1953년에 원삼각마을 큰암골 일대에 향토사단이 들어서면서 이 주변 대부분의 땅이 군사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이후 이 지역 어르신들 가운데는 사격장에서 군인들이 총과 대포쏘는 소리를 은유하여 ‘설장고에 거문고 울린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소지명
  • 재기, 가작(佳作), 가자기 : 삼각 서남쪽에 있는 마을.
  • 원삼각(元三角) : 삼각동의 원 마을.
  • 월산, 점촌 : 삼각 북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월각산(삼각산)밑이 됨
  • 암골 : 현 향토사단 소재지.
  • 상 : 현 사격장.
* 제보 : 김기석(58), 삼각동 131번

[삼각동 - 유물유적]

정려각
삼각 수원백씨 충효정려각

삼각 수원백씨충효정려각

* 수원백씨 충효정려각(水原白氏 忠孝旌閭閣) : 삼각동 275-4(우치로 892), 1859년

충신 백홍암(白弘?)과 효자 백찬수(白讚洙)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9년 국가에서 명정(酩酊)하고 1962년 4월 24일 현 장소에 건립하였다. 이 정려각은 콘크리트 바닥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기둥을 세워 일식기와를 얹은 소슬문으로 되어있다.

충효를 겸비한 백홍암은 병자호란 때 이흥발(李興?)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진군하였으며 돌아와 부모님을 섬기며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친상(親喪)을 당하여 시묘(侍墓)를 3년 동안 살았는데 범이 항시 호위하였다 하여 그곳을 호계라 하였다 한다.

효자 백찬수(白贊洙, 1822-1858)의 자(子)는 대연(大宴), 호는 곡은(梏隱)으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 섬기기를 잘하였으며 친상을 당하여는 예(禮)대로 행하는 한편 선대 홍념공의 충효사적을 찾아 정려를 받도록 하였다. 이에 홍념은 <忠孝贈嘉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總府剖總官白弘念之閭>라 하고 백찬수는 <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白贊洙之閭>라 하려 명정하였다.

보호수
삼각동 보호수

삼각동 보호수

* 보호수 : 삼각동 516(가작길 26), 수령 250년

이 보호수는 수령 250년 된 느티나무로 마을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훔쳐 달아나려 하였으나 나무가 도둑을 지켜 잡았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당산할머니가 도둑을 못나가게 하였다고 함). 나무둘레는 3.5m, 수고는 10m이다.

☞ 교통편 : 시내버스
서산동사무소와 그린타운@사이 동물병원에서 오른쪽으로 50m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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