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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御諱 <懿仁王后> (1555--1600) 의인왕후(懿仁王后) 1555(명종
10)~1600(선조 33). 조선 제14대왕 선조의 비. 반성부원군(潘城府院君) 박응순(朴應順)의 딸이다. 1569년(선조 2)
왕비에 책봉되어 가례(嘉禮)를 행하였고, 1590년 장성왕후(章聖王后)의 존호를 받았다.죽은 뒤 1600년(선조33년) 6/27
소생없이 승하 그해 12/22 건원릉 동쪽 셋째산줄기에 안장(東九陵) 1604년 휘열(徽烈), 1610년(광해군 2)
정헌(貞憲)의 존호가 가상(加上)되었다. 소생은 없고, 능호는 목릉(穆陵)이다.
선수 2 11/1 상이 현령(縣令)
박응순(朴應順)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 가례(嘉禮)를 이루고서 종묘(宗廟)에 고 하고 이어 반사(頒赦)
하였다. 응순은 처음에 돈녕 도정(敦寧都正)에 제수되었다가 이에 이르러
반성부원군(潘城府院君) 영돈녕부사(領敦寧 府事)에 초배(超拜)되었다. 선조 2 융경(隆慶) 3년
기사 가을에 반성 부원군(潘城府院君) 박응순(朴應順)의 딸을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다 선수13 11/1
영돈녕부사 반성 부원군(潘城府院君) 박응순(朴應順)이 졸하였다 박응순은 왕비(王妃)의 아버지로서 조금도 정사에
간여하는 습관이 없었고 마음을 편히 고요히 함으로 자신을 지켰으며 집안 생활이 사치스럽지 않아서 남들이
그가국구(國舅)인지를 알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