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고향(반남박씨)

역대인물:2世 휘(諱) 宜(의) 급제공(及第公)

월명실 2013. 4. 19. 20:27

순번




시호

관직

2

2

의(宜)




급제
2世 휘(諱) 宜(의) 급제공(及第公)

반남박씨가 麗末에 中央官界에 등장한것은 2世 朴宜가 급제 하면서부터인듯하다


의(宜)의 묘는 실전이다,
벌고개에서 십리되는 공암현 마산리에 한 고총이 있는데 박씨산이라는 전설이 있으나

그곳에 사는 서가가 그곁에 여러번 장사를 하였고 또 반남리에는 정가의 죽림속에 고총이 있는

데 또한 박씨묘라는 말이있어

영조 경진년에 십칠세손인 도원 두곳을 찾아보았으나 모두 증거가 없었다.

박문찬이 장연족보를 했는데 그의말에 <공은 송도의 성등동에 살았는데 묘는 풍덕에 있다> 고 하엿고

또는 <관직은 봉익대부 추밀사며 배위는 윤씨이고 용기순위사 대호군 윤보의 딸이다>했으나

타보에는 없으니 괴이한 것이다.(전설에는 묘는 반남서원의 북쪽 음판촌의 뒤라고 한말이 있으

나 확실하게는 알수없는 것이다.

또한 전설에는 묘가 마산에 있다고 하나 마산이 처음은 어느군인지몰라서 십삼세손인 세채가

일찌기 파주에살 때 비로소 그 주경에 마산이 있다는 말을 듣고 또 전설에 박씨묘가 이곳에 있

다는 말도 있어서 몇해동안 찾다가 퇴임한뒤에 나주봉현에서 십리되는 곳에 마산리라는 이름이

있고 리중에는 일암이 있는데 암석에 구멍이 많기 때문에 공암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반남선생의 行狀에 의하면 선생은 공암현 마산리에서 태어났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땅

인가. 공암아래는 한 려조의 고총이 있는데 전설에는 박우의 무덤이라 하고 또한 마산리안에는

한 마을이있는데 박가촌이라고 하엿으니 대개 禹와 의는 글字 음이 와전되기 위운 것이라.지명

과 촌명은 서로 맞으니 이것이 혹시나 증거가될까. 다만 려조의 장지에는 반드시 유현한 표지

가 있기 때문에

도원이 안찰사로 왔을 때 땅을 깊이 파 보았으나 마침내는 증거가 없었으니 어찌 의심이 나지 않겠는가.

혹은 말하되 어느 때인가 호장공의 묘를 개축할 때 묘지가 묻혔는지를 찾으려고 영역을 널리 파보았으나 마침내 所得은 없었으니 또한 이상한 것이 아닌가.



(高麗列朝登科錄) 급제 기록

[인적사항]UCI G002+AKS-KHF_12BC15C758FFFFU9999X0

본관 반남(潘南)

[이력사항]

[가족사항]

[부] 성명 : 박응주(朴應珠)

[출전]《고려열조등과록(高麗列朝登科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