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고향(반남박씨)

역대인물:23세 박정양(朴定陽)-죽천

월명실 2013. 4. 19. 09:17

순번




시호

관직

367

23

정양(朴定陽)

치중

죽천

문익

내각총리대신
23세 박정양(朴定陽) 1841-1904

23세 휘 박정양(朴定陽) 1841(헌종 7)~1904.
응천-동민-환-세성-태원-弼履--사석--윤원--종여--운수--제근--정양--승희
.--준원--수빈박씨
--종경--岐壽
--종보--周壽--齊憲

자는 치중(致中), 호는 죽천(竹泉). 제근(齊近)의 아들이다.
1866년(고종 3)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79년 형조참판을 지냈고,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문물을 시찰하고 귀국하여 이용사당상경리사(理用司堂上經理事)가 되었다.
1882년 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좌승지 등을 거쳐 1883년 이후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기기국총판(機器局總辦)?내무협판?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사헌부대사헌?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도승지 등을 지냈으며, 1887년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를 거쳐 주미전권공사(駐美全權公使)에 임명되었으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압력으로 출발을 연기하였다가 그해말에 청나라의 방해를 무릅쓰고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Cleveland, S. G.)에게 신임장을 제정하였다.
계속된 청나라의 압력으로 1889년에 귀국하여 홍문관부제학이 되었고, 1892년 전환국관리(典#환02局管理), 1894년 호조판서?교정청당상?한성부판윤을 지내고, 갑오경장으로 군국기무처가 신설되자 회의원이 되었다.
이해 11월 제2차김홍집내각(第二次金弘集內閣)의 학무대신이 되고, 1895년 김홍집내각이 붕괴되자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을미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왕궁호위병 교체문제로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일본의 협조로 유임되었다. 같은해 7월 내각총리대신을 사임하고 제3차김홍집내각의 내부대신이 되었고, 1896년 아관파천으로 김홍집이 살해되자 내부대신으로 있으면서 총리대신서리와 궁내부대신서리를 겸임하였다. 이해 9월 내각이 의정부로 개편되자 (參政大臣)이 되었다.
1898년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만민공동회에 참석하여 시정의 개혁을 약속하였으나 수구파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11월 황국협회(皇國協會)가 폭력으로 독립협회를 탄압한 사건이 일어나 내각이 경질되자 다시 내부대신이 되었다. 조선 말기의 불편부당한 온건중립파로서 진보적인 개화사상을 가지고 이상재(李商在) 등 개화파인사들의 뒤를 돌보았다.
편저로는 《죽천고竹泉稿》?《해상일기초海上日記草》?《일본내무성급농상무성시찰서계日本內務省及農商務省視察啓》?《일본내무성시찰기日本內務省視察記》?《일본농상무성시찰기日本農商務省視察記》가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사마방목>
《박정양(朴定陽)高宗) 01 (1864) 증광(增廣生員)
【합격등위】 3등 0058
【본인거주】 경(京)
【본인구존】 중시하(重侍下)
【본인문과】 병인(丙寅) 1866 정(庭) *
【본인전력】 유학(幼學)
【본인과목】 일의(一義)
【부친성명】 박제근(朴齊近)
【부친품계】 통훈대부(通訓大夫)
【부친관직】 강서(江西)/행현령(行縣令)

<문과방목>
박정양(朴定陽) More Info.
고종(高宗)3년(1866년), 정시(庭試) 병과4(丙科4)
생년(生年) 1841년, 신축
자(字) 치중(致中)
본관(本貫) 반남(潘南)
거주지(居住地) 경(京)
부(父) 박제근(朴齊近)
조부(祖父) 박운수(朴雲壽)
증조부(曾祖父) 박종여(朴宗輿)
외조부(外祖父) 이응재(李應在)




박정양 [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
1882년 5월 22일 한미 수호조약이 체결되고 거의 5년 반이 지난 1887년 11월 16일『초대 주미 공사 박정양(朴定陽)』은 미국에 부임하기 위해 인천에 정박중인 미국 군함『오마하』호에 올랐다.
오마하호는 서울에 주재하는 미국인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인천과 일본의 나가사키를 왕래하고 있었는데 『조지』함장이 자청해서 박정양 일행을 태우게 되었다.『박정양』은 오마하 호에 탑승할 때 조지 함장 이하 승무원들은 정장을 하고 함상에 정열해서 군악을 연주하면서 태극기를 높이 달고 15발의 예포를 쏘으며 맞이했다.
감격적인 순간 이었다.박정양은 이렇게 미국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부임 길에 올랐다.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홍콩 및 요코하마를 돌아본 후 영국 여객선을 타고 하와이를 거쳐 47일만인 12월 28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1888년 1월 9일 위싱턴에 도착하여 『에비트하우스』에 투숙했다.
1888년 1월 17일 미국 22대 대통령인『그로버 클리브랜드』와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고 악수를 나누어 인사했다.
이로써 『초대 주미 공사』가 된 것이다.역사적인 순간 이었다.박정양은 국서(國書)를 봉정하고 백악관을 물러 나온 후 신임 인사차 워싱턴 주재 각국 공사와 미국의 각부 장관을 예방하고,공사로써의 임무를 본격화 하였고 워싱턴 15번가 1513번지에 자리잡은『피셔』의 집을 임차하여 공사관을 열었다.
초대 주미 공사 박정양(朴定陽 1841 - 1904 )은 조선의 정치가로 자는 치중(致中)이며 반남박씨 23세손이다. 호는 죽천(竹泉),시호는 문익(文翼)이고 한편 參奉公(참봉공) 東民의 11세손으로 제근(齊近)의 아들이다
1866년(고종 3)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79년 형조참판을 지냈고,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문물을 시찰하고 귀국하여 이용사당상경리사(理用司堂上經理事)가 되었다.1882년 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좌승지 등을 거쳐 1883년 이후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기기국총판(機器局總辦)?내무협판?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사헌부대사헌?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도승지 등을 지냈다.
1887년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를 거쳐 주미전권공사(駐美全權公使)에 임명되었다.고종이 박정양을 주미 공사로 임명한 것은 1887년 7월 8일로 임명 후 한달 남짓 부임준비를 한다음 고종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미국으로 출발하려고 했다.그러나 출발 직전 청국(淸國)의 항의로 출발을 늦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청국은 외교사절을 서양에 파견하려면 왜 미리 상의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국가 재정이 어려운데 외교사절을 미국에 상주 시킨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었고 또한 외교 사절의 호칭문제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교섭을 벌인 끝에 호칭은 全權公使의 호칭을 사용하되 청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청국과 영약삼단(?約三端)이란 조약을 맺었다. 영약삼단의 내용은 한국의 외교 사절은 ① 주재국에 도착하면 먼저 청국공사를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성에 간다. ② 대한제국 공사는 회의나 연회석상에서 청국공사의 밑에 자리를 잡는다 .③ 대한제국 공사는 중대사건이 있을 때 반듯이 청국공사와 미리 협의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정양은 미국에 도착해서 부터 영약삼단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외교활동을 했다.워싱턴에 도착한 다음날인 1월 10일 미 국무성으로 『베야드』장관을 예방하여 한문으로 쓴 국서의 부 본과 영문독본을 제출하고 미국 대통령에게 국서를 봉정하는 날자를 잡았다.이러한 사실을 안 워싱턴 주재 청국공사는 박정양에게 사람을 보내어 영약삼단을 이행 하라고 따졌다.
그러나 박정양은 본국을 떠나 올 때 너무 급하게 서둘다가 정부의 지시를 자세히 받지못하고 왔으며 영약삼단을 따를 수 없다고 영약삼단을 지키지 않았다. 『박정양』은 계속『영약삼단』을 지키지않고 청국공사와의 불화 등이 문제가 되어 부임한지 1년이 채 못되어 귀국하게 되었지만『독자적인 외교』를 펼쳤던 박정양의 노력은 높이 평가 받을만 한다.
1889년에 귀국하여 홍문관부제학이 되었고, 1892년 전환국관리(典局管理), 1894년 호조판서?교정청당상?한성부판윤을 지내고, 갑오경장으로 군국기무처가 신설되자 회의원이 되었다.1894년 11월 제2차김홍집내각(第二次金弘集內閣)의 학무대신이 되고, 1895년 김홍집내각이 붕괴되자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을미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왕궁호위병 교체문제로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유임되었다. 1895년7월 내각총리대신을 사임하고 제3차김홍집내각의 내부대신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김홍집이 살해되자 내부대신으로 있으면서 총리대신서리와 궁내부대신서리를 겸임하였다. 1896년 9월 내각이 의정부로 개편되자 참정대신(參政大臣)이 되었다.
1898년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만민공동회에 참석하여 시정의 개혁을 약속하였으나 수구파의 반대로 좌절되었다.1898년 11월 황국협회(皇國協會)가 폭력으로 독립협회를 탄압한 사건이 일어나 내각이 경질되자 다시 내부대신이 되었다. 조선 말기의 불편 부당한 온건 중립파로서 진보적인 개화사상을 가지고 이상재(李商在) 등 개화파인사들의 뒤를 돌 보았다.
편저로는 《죽천고 竹泉稿》?《해상일기초 海上日記草》?《일본내무성급농상무성시찰서계 日本內務省及農商務省視察書啓》?《일본내무성시찰기 日本內務省視察記》?《일본농상무성시찰기 日本農商務省視察記》가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05/01/08(정사) / 주서에 박정양(朴定陽), 이만규(李晩奎), 이원용(李元用)을 추천하였다.
고종 05/04#07(갑인) / 한림 권점에서 박정양(朴定陽), 를 추천하였다.
고종 06/03/13(을유) / 별겸 춘추(別兼春秋) 박정양(朴定陽)은 부교리(副校理)로 임명하여 추모하는 뜻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종 06/10/25(계해) / 부교리(副敎理) 박정양(朴定陽 정사에 힘쓸 것을 진술하니 비답을 주었다.
고종 08/05/30(기미) / 전한 권점(典翰圈點)을 하여 박정양(朴定陽) 등을 추천하고
고종 10/02/19(무진) / 산실청 도제조 이하의 관리를 표창하다 》
부제조(副提調) 박제인(朴齊寅), 별겸 춘추(別兼春秋) 박정양(朴定陽)에게 다같이 품계를 올려주었다.
고종 10/12/14(무자) / 우부승지(右副承旨) 박정양(朴定陽),
고종 11/12/13(임오) / 경상 좌도 암행 어사 박정양을 접견하다
고종 13/05#19(경진)/ 우승지(牛承旨) 박정양(朴定陽),
고종 16/12/21(경신) / 보덕(輔德) 박정양(朴定陽), 은 모두 품계를 올려 주었다.
고종 18/08/30(기축) / 동래부 암행 어사 박정양 등이 다녀온 보고를 하다
고종 18/11/13(신축) / 박정양(朴定陽)을 경리 통리 기무 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로,
고종 18/12/14(임신) / 동래부 암행 어사 어윤중이 다녀온 보고를 하다 》
동래부 암행 어사(東萊府暗行御史) 어윤중(魚允中)을 불러들여 만났다. 다녀온 보고를 한 것이다.【이해 정월 중에 비밀 지시로 조준영(趙準永), 박정양(朴定陽), 엄세영(嚴世永), 강문형(姜文馨), 조병직(趙秉稷), 민종묵(閔種?), 이헌영(李쐵永), 심상학(沈相學), 홍영식(洪英植), 어윤중(魚允中) 등이 일본에 가서 시찰하였는데 명칭을 동래부암행어사(東萊府暗行御史)라고 불렀기 때문에 국사(國史)에는 ????다녀온보고를 하였다.[復命]????라고만 기록되었다. 그들의 다녀온 보고에는 각각 《문견기(聞見記)》를 올린 것이 있으나 번다하므로 다 기록할 수 없다.】
고종 19/02/09(을축) / 박정양을 대사성으로 임명하다
고종 19/05/20(을사) / 박정양을 이조 참판으로 임명하다
고종 19/12/26(무인) / 박정양(朴定陽)을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로 임명하였다.
고종 20/01/17(기해) / 박정양(朴定陽)?을 군국 사무 협판(軍國事務協辦)으로, 으로 임명하였다.
고종 20/01/22(갑진) / 박정양(朴定陽)예무(禮務)로 임명하고,
고종 20/07/14(임진) / 박정양(朴定陽)을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고종 20/11/04(신사) / 박정양을 이조 참판으로 임명하다
고종 21/11/07(정미) / 박정양을 청 나라 사신 영접관으로 임명하다
고종 21/12/07(정축) / 김윤식?박정양을 교섭 통상 사무 아문의 독판과 협판으로 임명하다
고종 24/06/07(계사) / 도승지 박정양 등을 임명하다
고종 24/06/29(을묘) / 내무부 협판(內務府協辦) 박정양(朴定陽)을 특별히 전권 대신으로 파견하여 미국 수도에 주재 하면서 공사의 직무를 처리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고종 24/08/07(신묘) / 미국에 주재할 전권 대신(全權大臣) 박정양(朴定陽)과 을 불러들여 만났다.
고종 26/07/24(무진) / 미국 주재 전권 대신으로 있다가 돌아온 박정양을 불러들여 만나보다 》
(美國駐在全權大臣)으로 있다가 돌아온 박정양(朴定陽)을 불러들여 만나보았다. 다녀온 보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나라 면적이 일본에 비하여 몇 배나 되는가?????라고 하니
박정양(朴定陽)이 말하기를, ????면적은 우리 나라에서 거리를 재는 법으로 계산하면 동서가 8,550리이고 남북이 4,800리 입니다. 이것은 세계지도에서 본 것이고 그 나라 사람을 만날 때마다 들어보니, 면적의 넓이는 아세아주의 중국이나 구주(歐洲)의 러시아보다 작지 않다고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나라에 주재해 있을 때 대통령이 접대하는 절차는 어떠하며 접견할 때마다 악수로 인사를 하던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그들이 접대하는 절차는 기타 각 나라들과 같으며 극히 친절했습니다. 서양 풍속에서는 악수하는 것으로 접견하는 인사를 하기 때문에 신도 그 나라에 들어가서는 그 인사법을 따라 악수로 인사를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나라는 매우 부강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던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였다.
????그 나라가 부강하다는 것은 비단 금이나 은이 풍부하다거나 무기가 정예하다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체의 실력을 배양하는 일에 실지로 힘쓰는데 달려 있는데, 재정으로 말하면 항구세를 가장 기본으로 하고, 그 다음은 술에 대한 세납이고, 그 다음은 조세이며 기타 잡세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근년에 한해의 수입은 거의 3억 7,140여 만원을 넘고 한해의 지출은 2억 6,790만원이니 지출과 수입을 대비할 때 남는 것이 4분의 1이나 됩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각 항구에 들어오는 물건의 세납을 줄이자는 논의도 하고 있으나, 어떤 사람들은 각 항구에 들어오는 물건의 세납을 줄인다면 다른 나라에서 명주, 비단, 도구 같은 물건이 날로 더 들어오게 되고 그에 따라 값이 싸지면 백성들은 사서 쓰기를 좋아하면서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백성들이 자연 게을러져서 나라가 빈약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세납을 줄이자는 논의는 결국 시행되지 못했으니, 그 나라가 부유하다는 것도 알 수 있지만 재정을 넉넉하게 하는 방법도 이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대체로 그 나라에서는 재정의 원천이 이렇게 넉넉하지만 그래도 비용을 절약하고 낭비하지 않기 때문에 날로 부유하여져서 각국의 으뜸으로 되었으니, 그 나라가 부유하게 된 요점은 전적으로 비용을 절약하는데 있고, 비용을 절약하는 요점은 전적 으로 재정에 달려있습니다. 그 나라는 제도가 주도면밀하여 일단 정한 규정이 있으면 사람들이 감히 어기지 못합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나라의 제도가 매우 주도면밀하다고 하는데 과연 어떠한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관리로 말하면 나라일을 자기 집일과 같이 여기며 각각 자기 직책을 지키는 것을 법으로 정하고 한 마음으로 게을리하지 않으며, 백성으로 말하면 관리와 농민과 장공인과 상인이 각각 자기 일에 종사합니다. 전국을 통털어 따져 보면 놀고 먹는 백성이 드물기 때문에 재정이 이로 인하여 부유하고 제도가 이로 인하여 주도면밀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가장 부유한 것은 실로 제도가 주도면밀한데 원인이 있겠지만, 인심이 순박하기도 각국에서 첫째라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던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각국의 인심을 다 알 수 없으나 미국은 독립한 지 100여 년에 불과하여, 토지는 아직 개간하지 않은 곳이 많으므로 전적으로 백성들을 모집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문제를 나라의 큰 정사로 인정하기 때문에 인심이 자연 순박합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나라에 주재하고 있을 때 어느 나라 공사(公使)와 가장 친밀했는가?????라고 하니
박정양(朴定陽)이 말하기를, ????공사들이 교제에서는 서로 좋게 지내기에 힘쓰기 때문에 별로 친근하거나 멀리하는 차이가 없습니다만, 우리 나라와 조약을 맺은 나라 공사와 더욱 친밀하게 지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일본 사람들은 각국에 왕래하면서 좋은 제도를 많이 모방하여 법률까지 고쳤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일본 사람들이 각국에 왕래하면서 정치와 법률에서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여 모방한 것이 많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미국이 재정이 풍부하고 제도가 주밀하다는 것은 정말 소문대로이다. 그런데 전적으로 농사일에 힘을 쓴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던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농사만이 아닙니다. 관리, 농민, 장공인, 상인들이 각각 자기 일에 힘쓰고 있는데, 미국의 남쪽지방에서는 농사에 가장 힘쓰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미국은 나라를 세운 지 얼마되지 않는데 그 정치제도가 이러하고 관리, 농민, 장공인, 상인들이 모두 자기 일을 잘하고 있으니 영국보다 우세할 것 같다. 그런데 영국은 상업만을 위주로 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영국은 땅이 좁고 인구가 많아서 무역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자연 상인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나라에서는 항구세를 많은 경우 100분의 5를 받는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미국의 항구세는 수출세를 낮게 하여 주민들이 생산에 힘쓰도록 장려하고, 수입세를 높이어 외국 물품이 백성들의 돈을 거둬 내가는 것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 100분의 5도 받고 혹 100분의 10도 받는데, 그것은 그 물품에 따라서 백성들에게 유리한 것은 세를 낮게 매기고 들어오는 물품 중 백성에게 해로운 것은 세를 높이 정하여 막아 버립니다. 명주, 비단, 담배, 술 같은 것들은 관세가 원가보다 높은 것이 있으므로, 다른 나라에서 처음 오는 상인들은 가끔 세금이 원가에 맞먹는다고 말합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나라는 면적이 그렇게 넓고 백성들의 집도 크고 화려하지만 대통령의 관청은 별로 화려하지 않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대통령의 관청은 백성들의 개인집과 구별이 없으며 부유한 백성들의 집에 비교하면 도리어 미치지 못할 정도로 매우 검소합니다. 그러나 개인집보다 다른 것은 건물을 전부 흰칠을 했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백궁????이라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나라는 남 쪽으로 칠레와 브라질를 이웃하고 북쪽으로 영국(英國), 아라사[俄羅射, 러시아] 등에 속한 땅과 경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북미국(北美國)인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남북경계는 과연 전하(殿下)의 이야기와 같은데 북미합중국(北美合衆國)이라고는 부르지만 아메리카주 전체를 놓고 말한다면 미국은 그 복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나라는 해군, 육군의 제도가 그다지 정비되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그 나라에 상비육군은 3만명에 불과한데 각 진영에 배치했으며, 현재 워싱톤에 주둔하여 있는 군사는 몇백 명에 불과합니다. 그 나라의 크기에 비하여 군사를 보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 밖에 또 민병(民兵)이라고 부르는 것이 각 지방, 각 촌락에 있고 군사학교가 있어서 백성들에게 훈련을 가르치는데 정부에서 군량을 대주지 않아도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마다 천만 명의 정예병을 선자리에서 동원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군사를 백성에 부속시킨다.????라고 하는 것인데,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관리나 백성이나 차이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군사 학교는 나라에서 세운 것인가 개인이 세운 것인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나라에서 세운 것도 있고 개인이 세운 것도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가는 길에 단향산(檀香山)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느 지방인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그 것은 하와이국에 속하는 한 개의 섬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하와이국은 작은 나라이다. 오가는 길에 과연 두루 보았겠는데 그 면적은 얼마나 되는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하와이는 바로 태평양 가운데 있는데 여러 섬을 모아서 한 나라를 이룬 것으로서 유구국[琉球國, 오끼나와]이나 우리 나라 제조(濟州)에 비교하여도 그보다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이 미국으로 갈 때에 배가 그 경계에 닿았으나 밤이 깊어서 육지에 내리지 못하여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항구와 수도는 매우 영락되어 있었습니다. 40년 전에 살이 부풀어 오르는 병[疱疾]이 돌아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근래에 구라파, 아세아 각 주의 백성들을 모집하여 다가 겨우 모양을 갖추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하와이는 한 개의 섬나라인데 미국(美國)과 영국(英國)이 그전에 서로 분쟁한 일이 있었다고 하니 무슨 까닭이었는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영국에서 항와이를 먹으려고 하니 하와이는 그의 침략에 견딜 수 없어 미국에 속하기를 원했으니 그것은 대체로 영토가 가깝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본래 남의 땅에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속국이 되겠다는 그 나라의 소원을 승인하지 않고 그대로 자주 독립하게 하여 지금까지 보호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에 주재하는 미국 공사(美國公使) 단시모[丹時謨, 제임스 모어]는 이미 교체되었지만 새로 임명된 공사도 곧 그만두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단시모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 나라에서 새 공사를 파견한 후에 미국의 새 공사도 파견되어 온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미국은 자체의 실력을 기르는데만 힘쓰고 외교는 부차적인 일로 여기기 때문에 사신으로 내보내는 사람들의 봉급이 서양 여러 나라들에 비하여 좀 적습니다. 혹시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민주국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각각 자유로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 만큼 정부에서 강요할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 새 공사를 파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단시모의 말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다른 나라에 사신을 내보내는 것은 다 다른 나라의 사신이 자기 나라에 와서 주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등급이 높은 관리를 원하는 것은 다른 나라가 자기 나라를 우대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물론 요즘 각각 외교의 일반적인 추세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역땅에 오가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고는 많았지만 각국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신의 임무를 잘처리한다고 하니 이것은 다행한 일이다.????라고 하니 박정양이 말하기를, ????사신으로 가는 의리가 중한데 어떻게 감히 노고에 대하여 말하겠습니까? 학식이 부족하여 자연 잘못하는 일이 많았으니 황송하여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하였다‘...........
고종 026 26/11/09(신해) / 박정양(朴定陽)을 부제학(副提學)으로,
고종 028 28/08/08(기해) / 박정양을 형조 판서로 임명하다
고종 028 28/09/15(병자) / 박정양을 호조 판서로 임명하다
고종 029 29/06/23(기유) / 박정양(朴定陽)을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
고종 029 29/07/02(정해) / 박정양(朴定陽)을 진찬소 당상관(進饌所堂上官)으로 임명하였다.
고종 029 29/11/02(병술) / 박정양(朴定陽)을 전환국 관리(典췧局管理)로 임명하고
동시에 교환서 관리(交換署管理)로 임명하였다.
고종 029 29/12/22(병자) / 박정양을 판의금부사에 임명하다
고종 030 30/07/11(신묘) /호조 판서(戶曹判書) 박정양(朴定陽)을 중건소 당상관(重建所堂上官)으로 정원 외에 더 임명하 라고 지시하였다.
고종 031 31/06/24(기사) / 박정양(朴定陽)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고종 031 31/06/25(경오) / 김홍집, 박정양 등을 군국기무처 회의원으로 임명하다
고종 032 31/08/16(경신) / 박정양(朴定陽)을 일본을 답례 방문하는 대사(大使)로,
고종 032 31/11/21(계사) / 학무 대신(學務大臣) 박정양(朴定陽)이 칙령(勅令)을 받았다.】
박영효(朴泳孝)를 내무 대신(內務大臣)으로
고종 038 35/10/09(양력) / 외부 협판(外部協辦) 박제순(朴齊純)을 외부 대신(外部大臣)으로,
특진관(特進官) 박정양(朴定陽)을 의정부 찬정으로 임명하고
고종 038 35/12/04(양력) / 종1품 박정양(朴定陽)을 농상공부 대신(農商工部大臣)으로,
종2품 박제순(朴齊純)을 외부 대신(外部大臣)으로,
정2품 박기양(朴箕陽)을 비서원 (찅書院卿)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