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고향(반남박씨)

역대인물:23세 박성양(朴性陽)-운창

월명실 2013. 4. 19. 09:15

순번




시호

관직

360

23

성양

계선

운창

문경

호조참판 대사헌
23세 박성양(朴性陽)1809(순조 9)~1890(고종 27).

소-응천-東民-煥-世城-泰迪-弼鼎-師漢-盛源-宗祿-祖壽-齊日-性陽

자는 계선(季善), 호는 운창(芸窓). 서울출신. 제일(齊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운원(運源)의 딸이다. 이지수(李趾秀)의 문인이다.
천자(天姿)가 청명하고 용모가 단정하였다. 일찍이 외가에서 공부하다가 이지수 문하에 들어가 경의(經義)를 배웠다.
1866년에 양이(洋夷)가 강화도에 침범하자, 이를 물리쳐야 한다는 내용의 〈벽사명 闢邪銘〉을 지어 사람들을 깨우쳤다. 송근수(宋近洙)의 천거로 1880년(고종 17)에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고, 이어 사헌부지평?호조참의?동부승지?호조참판?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저편서로는 《운창문집 芸窓文集》 15권을 비롯하여 《이학통고 理學通攷》?《호락원류 湖洛源流》?《가례증해보유 家禮增解補遺》?《거상잡의 居喪雜儀》?《속통감 續通鑑》?《국조기이 國朝記異》 등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고종 17/09/08(계유) / 김낙현, 박성양, 이상수를 경연관, 서연관으로 임명하다 》
고종 17/09/11(병자) / 박성양(朴性陽)을 자의(諮議)로 임명하였다.(諮議; 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관직)
고종 17/09/11(병자) / 박성양을 타이르다 》 자의(諮議) 박성양(朴性陽)에게 타일러 말하기를,
????예로부터 훌륭한 선비는 반드시 훌륭한 임금을 기다려서 일어나기 때문에 몸이 시골에 있어도 성인의 글을 항상 공부하면서 임금을 존경하고 백성을 보호하는 일을 스스로 맡아 도(道)를 실천하고 학문을 전개하며 임금이 부르면 사양하지 않고 선뜻 나서는 것이 바로 본분이고 의지였던 것이다.
경은 이름있는 집안의 대대로 벼슬을 지낸 자로서 나라와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해왔으며 병으로 (草野)에 있으면서 공자(孔子)의 학문을 연구하고 정주학(程朱學)의 뜻에 통달하였다. 늙어서도 학문을 좋아하여 진실로 곤궁한데도 해이해지지 않았으므로 당대 선비들의 으뜸으로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유독 자신만을 좋게 하려고 한 것이겠는가. 대궐에 나와서 임금을 돕는 계책을 말해 줄 것이다. 내가 몹시 사랑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경이 기다렸다가 나서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자(世子)의 슬기로운 자질이 날로 갖춰지고 사(師), 부(傅)의 상견례(相見禮)도 좋은 날을 받아놓았다. 경에게 자의(諮議)의 벼슬을 주었으니 경은 제때에 길을 떠나 빨리 와서 빛나게 바른 일과 바른 말로 세자(世子)를 도울 것이다. 이것이 또한 내가 좌불안석(坐不安席)하면서 목마르게 기다리는 까닭이다.
가을철도 깊어가니 경이 그리워진다. 흰 말을 타고 올라와서 이 저녁을 함께 지내기 바란다. 경은 나의 지극한 뜻을 체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종 17/09/27(임진) / 이명응이 김낙현, 박성양, 이상수의 부주 서계를 가지고 보고하다 》
충청 감사(忠淸監司) 이명응(李明應)이 진선(進善) 김낙현(金洛鉉), 자의(諮議) 박성양(朴性陽), 서연관(書筵官) 이상수(李象秀)의 부주 서계(附奏書啓)를 가지고 보고하였다.
박성양(朴性陽)의 부주 서계(附奏書啓)에는 이르기를, ????초야의 미천한 신이 외람되게 이 큰 은혜로운 지시를 받았으므로 마음의 격정을 누르지 못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히 태연스럽게 지시를 받아서 스스로 참람한 죄를 범할 수 없어서 삼가 놀란 정신을 차려가지고 죽음을 무릅쓰고 하소연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고종 017 17/10/11(병오) / 박성양이 사직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다 》
자의(諮議) 박성양(朴性陽)이 상소를 올려 사직하자 비답(批答)을 내리기를,
????지난 번에 비록 부주(附奏)를 보았다 하더라도 멀리 가버리려는 마음을 애써 돌려세울 것을 나는 기대했는데 지금 온 편지를 보니 또다시 사양하였으니 실망을 누를 수 없다. 나는 꼭 오게 하려는 마음이 있으나 성의가 부족하고 믿음이 보이지 못하였고 경은 반드시 사양할 의리가 없는데도 고상한 뜻을 더욱 굳게 가지니 그렇다면 어진 사람을 좋아한 시(詩)와 좋은 자리를 펴놓고 초빙하는 예법은 과연 오늘날에는 실현하기 어렵단 말인가.
대체로 선비의 글공부는 반드시 써먹을 데가 있어서 덕행과 정사를 4과(四科)에 병렬하여 놓았던 것이다. 경은 이 뜻을 필경 깊이 알고 익숙하게 연구하였을 것이다. 하물며 지금 세자(世子)의 서연(書筵)을 자주 열고 있는 만큼 모름지기 노숙하고 학식있는 사람이 덕성을 길러주어야 할 것이다. 경은 선뜻 마음을 돌려먹고 즉시 조정에 나와서 이 두터운 기대에 부합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종 17/12/15(무신) / 박성양이 사직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다 》
자의(諮議) 박성양(朴性陽)이 상소를 올려 사직하고 옷을 하사한 은전(恩典)을 철회할 것을 청하니 너그럽게 권면하 는 비답(批答)을 내려 주었다.

《고종 18/08/23(임오) / 박성양을 타이르다 》자의(諮議) 박성양(朴性陽)을 타일러 말하기를,
????경를 불러 오는 것을 단 하루도 마음 속에서 잊어버린 적이 없다. 옛날의 어진이들을 손꼽아 보아도 역시 세상에 나가서 쓰이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실로 임금을 돕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방도가 시골에 있을 때부터 정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한 신하의 본의가 고상하게 벼슬하지 않는 사람과는 원래 다른 점이 있는 만큼 어찌하여 굳이 시골에 붙박혀 있으면서 포부를 펴서 자기 임금을 요순(堯舜)처럼 만들 것을 생각지 않는가.
하물며 지금 백성들의 뜻이 안정되지 않고 선비들의 추향(趨向)이 단정하지 못하므로 반드시 옳은 말을 하고 덕을 닦아서 유교를 부지하는 것이 눈앞의 급선무로 되었고 또 가을철에 경연(經筵)과 서연(書筵)도 장차 열어야 하겠으니 경은 빨리 마음을 고쳐먹고 조정에 나와서 나의 애타는 기대에 부합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종 18/11/09(정유) / 박성양이 사직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다 》
자의(諮議) 박성양(朴性陽)이 상소를 올려 사직하니 비답(批答)을 내렸다.
????이 해도 저물어가므로 경을 연모하는 마음이 날로 더해지는데 사임하는 편지가 이 때에 와서 줄곧 멀리 가려고만 하니 나의 말이 졸렬하고 예의가 부족해서 경으로 하여금 은퇴하려는 마음을 돌려세우게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대로 벼슬해 온 후손이며 노숙한 학문을 지니고서도 그저 혼자만 살고 혼자만 좋게 하려 하면서 자기 임금과 백성들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공평하게 하는 방도가 자신을 수양하고 가정을 잘 꾸리는데 근본을 두었다는 말과도 어긋나지 않겠는가. 더구나 지금 서연(書筵)을 자주 열고 경이 참가하여 강론하는 것을 더욱 기대하고 있는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런 지극한 뜻을 체득하고 빨리 조정에 나올 것이다.????

《고종 018 18/11/20(무신) / 송병선을 타이르다 》 자의(諮議) 박성양(朴性陽)에게 타일러 말하기를,
????어진 사람을 구하고 훌륭한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급선무이고 포부를 드러내어 써먹는 것은 옛날의 명철한 사람들이 실행한 것이다. 경은 글을 읽어서 이치에 밝고 자신을 조심하여 행실이 독실하니 마땅히 스스로 중책을 맡아나서야 하겠는데 도리어 영영 시골에서 살 것을 맹세하기를 마치 은퇴한 선비가 자신만 보전하려는 것처럼 하고 세상에 나가서 쓰여서 애타게 도움을 받으려는 나의 기대에 맞추려고 하지 않고 있다. 비록 나의 정성과 대우가 박해서 믿음을 사지 못한 탓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어찌 지난 날부터 경에게 바라던 것이겠는가. 세자(世子)의 입학과 관례(冠禮)는 이미 내년 정월달에 길일을 정했으니 세자의 학문이 성취되고 예식이 성대히 진행되는 것은 경이 조정에 나오는 데에 달렸다. 그러니 나의 지극한 뜻을 체득하여 며칠 내로 길을 떠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서연관(書筵官) 이상수(李象秀)에게 타일러 말하기를,
????예식을 갖추어 부르고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는 성의가 아직도 부족해서인가. 예로부터 훌륭한 포부를 품고도 조정에 나와서 속에 쌓인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경에 대하여 유감이 없을 수 없다. 수양을 쌓은 훌륭한 소문이 이미 나에게까지 들였으나 멀리 떠나가려는 마음을 돌려세우지 못하고 타고 온 백마를 마당에 매어두지 못하였으니 자나깨나 만나고 싶은 생각을 어찌 하루인들 마음속에서 잊겠는가. 지금 동지(冬至)가 지나고 해가 길어져가므로 경연(經筵)과 서연(書筵)을 자주 열고 있다. 또 하물며 세자(世子)의 입학과 관례(冠禮)를 차례차례 내년 정월달에 거행할 것이니 경은 결연히 마음을 돌려 보좌하는 방도를 다하고 경사스런 예식을 함께 거행하지 않겠는가. 마음을 터놓고 타이르면서 경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겠다.????라고 하였다.
고종 19/01/04(신묘) / 송병선?김낙현?박성양?이상수 등을 돈소하다 》

찬선(贊善) 송병선(宋秉璿), 진선(進善) 김낙현(金洛鉉), 자의(諮議) 박성양(朴性陽), 서연관(書筵官) 이상수(李象秀)를 돈소(敦召)하였다. 세자(世子)의 관례(冠禮)가 시일이 임박하였기 때문이었다.
---계속----

순종03/08/25 죽은 도헌(都憲) 박성양(朴性陽)은 덕을 수양하는 숨은 선비로서 세상 사람들의 스승으로 되었으며,

순종03/08/26(양력) / 이간 등 57명에게 시호를 주고 이총 등 3명의 시호를 고쳐주다 》
박성양(朴性陽)에게 문경공(文敬公)이라는 시호를,
박영교(朴泳敎)에게 충목공(忠穆公)이라는 시호를,
박원양(朴元陽)에게 정간공(貞簡公)이라는 시호를,
박제인(朴齊寅)에게 정익공(靖翼公)이라는 시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