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삶의 날개
이 시간이면 깨어있는 사람보다 아직 따뜻한 이불 속에서 단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더욱 많을 거에요. 그러나 당신은 이미 집을 나서 살을 에듯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을 맡기고 있겠지요. 그리고는 밤 12시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당신.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도 늘 힘겹기만 한 우리 생활이 당신을 많이 지치게 하고 있네요 내가 여느 아내들처럼 건장한 여자였다면 당신의 그 힘겨운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질 수 있으련만, 평생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는 그럴 수가 없기에 너무나 안타까워 자꾸 서러워집니다. 자동차에다 건어물을 싣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당신. 그런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 한 방울, 전기 한 등. 10원이라도 아껴 쓰는 것이 전부라는 현실이 너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불편한 나의 다리가 되어주고, 두 아이들에게는 나의 몫인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하고, 16년 동안이나 당뇨로 병석에 누워 계신 친정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당신.......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어머니께 딸인 나보다 더 잘하는 당신이지요. 이런 당신께 자꾸 어리광이 늘어가시는 어머니를 보면 높은 연세 탓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속이 상하고 당신에게 너무너무 미안해 남 모르게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답니다. 여보, 나는 가끔 깊은 밤잠에서 깨어 지친 모습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가엾은 사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 평생 걷지 못하는 아내와 힘겹게 살아야 할까? 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복받치지만 자고 있는 당신에게 혹 들킬까 봐 꾸역꾸역 목구멍이 아프도록 서러움을 삼키곤 합니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당신을 따라 나섰지요. 하루 종일 빗속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게 되지요. 그런데 며칠 전 겨울비가 제법 많이 내리던 날. 거리에서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리 부부 나이 정도의 남녀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고 우산을 자꾸 밀어내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이 비를 몽땅 맞으며 물건 파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내가 느꼈던 아픔과 슬픔은 어떤 글귀로도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어요. 그때 나는 다시는 비 내리는 날 당신을 따라 나서지 않겠노라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답니다. 그리고 여보, 지난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당신은 결혼 때 패물 한가지도 못해줬다며 당신이 오래도록 잡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나에게 조그마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지요. 그때 내가 너무도 기뻐했는데 그 반지를 얼마 못 가서 생활이 너무 힘들어 다시 팔아야 했을 때, 처음으로 당신이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신은 그때 일을 마음 아파하는데, 그러지 말아요. 그까짓 반지 없으면 어때요. 이미 그 반지는 내 가슴속에 영원히 퇴색되지 않게 새겨놓았으니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해요. 3년 전 당신은 8시간에 걸쳐 신경수술을 받아야 했었지요. 그때 마취에서 깨어나는 당신에게 간호사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나를 가리키며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요,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사람인데요"라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바보처럼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한없이 눈물만 떨구었어요. 그때 간호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세요"라고 그래요, 여보.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예요. 건강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늘 나의 곁에 있기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어린 시절 가난과 장애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에 나는 지금 이 나이에 늘 소원했던 공부를 시작했어요. 적지 않은 나이에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야학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어머님 저녁 챙겨주고 집안 청소까지 깨끗이 해 놓고 또다시 학교가 끝날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와주는 당신. 난 그런 당신에 대한 고마움의 보답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여보, 나 정말 열심히 공부해 늘 누군가의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예요. 당신이 있기에 정말 행복합니다. 당신은 내 삶의 바로 그 기둥입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늘 감사의 두 손을 모으며 살 겁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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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 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 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성경 고린도전서 13 :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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