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세월은 이렇게 가는 것을- 김동길 교수

월명실 2015. 4. 1. 21:20

2015/02/02(월) -세월은 이렇게 가는 것을- (2469)

 

정월 초하루가 어제만 같은데 벌서 2월에 접어들었고 내일 모레 글피면 입춘(立春)입니다. 문자 그대로 봄이 시작된다는 날입니다. 이렇게 빠른 세월의 속도 속에 “살아 있다”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멍청하게 서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많은 시간 서 있지 못하고 앉아 있습니다.

나는 70년대에 15년 징역을 언도 받고 안양교도소에 살았습니다. 한 동안 독방에서 기거했는데 그 때에는, 오스카 와일드가 그의 <옥중기>에서 말한 대로, 세월은 흘러가지 않고 한 자리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가지 않아서 지루한 세월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드러지게 하는 일도 없는데 세월만은 쏜살 같이 갑니다.

나이가 90이 다 된 노인이 어느 방송사에 일주일이면 두 번 씩 고정 출연하는데 그런 늙은이가 나 말고 또 있으랴 생각합니다. 그 중 한 프로에서는 김동건과 조영남이 나로 하여금 세월 가는 줄을 모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깁니다. 그 사람들도 다 70을 넘었으니 우리를 ‘노인 트리오’라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나도 주희 선생과 함께, “나 이제 늙었으니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고”라고 가끔 탄식을 하긴 하지만, 나의 인생의 막장도 어지간히 즐겁고 보람 있다고 생각하며 하늘과 땅에 감사할 뿐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