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전통건물의 등급

월명실 2013. 4. 14. 21:56

Ⅰ. 건물 등급의 편액

궁궐은 임금님이 사시면서 국정을 운영하는 정치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따라서 위로는 지존이신 임금님으로부터 관원들, 기타 여러 사람들까지 노비의 노비라고 할 수 있는 천한 허드레 일을 하는 사람들까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궁궐 안에서 살면서 혹은 드나들면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궁중 문화를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궁궐에는 굉장히 많은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이름 있는 건물, 중심적인 건물만 해도 많을 때는 약 300채 이상 되었다고 판단이 됩니다.

그러한 건물들에는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위계질서, 높고 낮음이 있습니다. 마치 사람들에게 신분이 있는 것처럼 건물에도 상하위계질서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위계질서는 우선 건물의 외형, 겉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건물의 겉모습이라는 것은 첫째 크기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건물의 크기를 따질 때, 옛날 건물을 볼 때 칸 수를

따집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한 칸으로 보고, 그 칸의 바닥이 몇 칸으로 이루어 졌느냐, 정면 몇 칸, 측면 몇 칸을 따지고요. 바닥 면적을 따진 다음에, 건물은 입체기 때문에

높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높게, 웅장하게 지었는가를 먼저 유심히 보셔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건물들이 똑같지 않습니다. 같은 크기라 할지라도 예를 들어 장식적인 것, 잡상이 올려 있는가 아닌가, 창호를 얼마나 화려하게 했는가 등등 여러 가지 장식적인 요소가 들어가서 건물의 외형, 건물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건물의 등급 내지 성격은 그 건물의 이름에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고유명사로써 지은 이름은 그 건물의 의미를 부여했겠지만 그 이름에 마지막 글자들을 유심히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건물을 보실 때 건물의 이름을 써 놓은 나무판 어떤 현판이라고도 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편액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편액의 끝 글자를 유심히 보시면 대개 여덟 글자 ‘전, 당, 합, 각, 재, 헌, 누, 정’ 여덟 글자 중에 어느 한 글자를 선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여덟 글자 이외에도 다른 글자를 쓸 수 있지만 그것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무시해도 될 정도입니다.

이 여덟 글자를 잘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자입니다. 인정전 할 때, 끝 글자 전, 그 다음 당, 합, 각, 재, 헌, 누, 정 이 여덟 글자를 눈 여겨 봐주시면 그것이 이 건물을 이해하며 그 건물에서 누가 어떤 활동을 했는가를 이해하는데 아주 요긴한, 쓸모 있는 기준,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Ⅱ. 임금의 공간

인정전이라고 하는 이름 들어보셨을 겁니다. 창덕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고 할까요?

위엄 있는 건물이 인정전인데, 그 인정전에 앞마당, 넓게 공간이 조성되어 있고, 바닥이 맨흙이 아니라, 얇고 넓은 박석이라고 하고 하는 포장이 되어 있는 그런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양 옆에 풍개석이 도열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조정입니다. 조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요. 정부를 뜻하기도 하고, 조선 초기에는 중국 정부, 명나라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점점 시대가 내려오면서 바로 이 공간, 인정전 앞에 넓게 조성되어 있는 마당을 가리켰습니다.

조정이라는 것은 바로 조회를 하는 마당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조회라는 것은 임금님과 정규 관원들이 모여서 이루는 각종 행사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임금님에게 축하의 의식(하례)을 드리기도 하고, 조참이라고 해서 한 달에 네 번 정해진 날짜에 많은 관원들이 모여서 임금의 말씀을 듣고, 충성의 서약 의식을 치르기도 하고, 또한 각종 큰 잔치를 치루기도 하는 공간입니다.

그런 만큼 인정전은 실무적인 일을 하는 공간이 아니고 의식 행사를 치룰 때에 임금님이 좌정(임허)하시는 공간으로써 임금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건물입니다. 따라서 크고 높게, 지붕도 중층 지붕, 겹지붕으로 해서 임금의 권위 자체를 드러내는 건물입니다.

전이라는 건물은 바로 임금과 왕비가 주된 사용자로써 공식적인 활동을 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등급 공간

전 다음에 등급이 당자가 붙은 건물입니다. 당은 당당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봐서는 가장 높은 건물입니다. 말하자면 대대로 내려오는 대단한 가문의 사가, 양반가의 가장 높은 건물, 주인이 사는 건물은 당자가 붙는 것입니다. 또한 궁궐에서 보자면 세자가 사는 건물도 당자가 붙습니다. 아주 당당한 건물로써 전 보다는 크기나 장식적인 요소에서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봐서는 당당한 일등급의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창덕궁의 동궁, 창덕궁에서 세자의 공간, 세자가 기거하며 공적인 활동을 하는 건물 이름이 중희당 이구요. 또한 창경궁으로 가보면 왕비의 집인 통명전 동쪽 바로 옆에 있는 건물 이름이 양화당 이런 뜻입니다. 당당한 건물, 그래서 전과 당을 합치면 전당입니다. 예를 들면 예술의 전당 이렇게 부르기도 하구요. 학문의 전당, 무슨 전당이라고 하면 중심이 되는 크고, 웅장하고, 기능이 대단한 건물, 공간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도, 전당이라는 단어도 이 건물의 명칭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Ⅳ. 보필 공간

전이 특급의 건물이라고 할 수 있고, 당이 일등급이라고 할까요. 일반적으로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본다면 전과 당 주변에 있으면서 전당의 기능을 보완, 보필하는 기능을 갖는 건물들을 합, 각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합, 각은 이등급 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일반적인 건물보다는 높은, 그렇게 낮은 건물이 아닌 것이죠. 전, 당 다음에 합, 각은 아주 크고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능이 대단하고, 임금이나 관료 혹은 세자의 활동 공간으로써 실무적인 기능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합과 각 중에서는 합이 각보다 약간 높다고 할까, 서열이 앞선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구요. 일반적인 경향으로 봐서는 ‘합은 여성들이 많이 썼다. 여성의 공간에 주로 많이 붙었다.’ 그렇게 볼 수 있

겠습니다. 예를 들면 1895년 명성왕후가 일본인들에 의해서 시해 당한 찔려 죽임을 당하신 그 건물 이름이 곤녕합입니다. 왕비의 집이라는 뜻이 들어 있죠. 물론 왕비의 공식적인 집은 전자가 붙었겠지만 그것은 경복궁 뒤편에 잇는 것이었기 때문에 곤녕합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각이라는 건물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물론 그 건물의 일층 부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만)이라든지 각자 붙은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대통령이나 이런 분들을 높여 부를 때 각하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서 나왔구요. 합하라는 말도 대원군에 대해서는 대원이 합하라고 부르는 경우 들 수 있겠구요. 그보다 더 높은 임금님을 지칭할 때는 전하라고 불렀던 것도 이런 데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Ⅳ. 보필 공간

전, 당 그 다음 이등급으로써 합, 각 그 다음이 가장 많은, 일반적인, 평범한, 평균적인건물들에는 대게 재 아니면 헌 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재, 헌은 일반적인 건물로써 매우 실용적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크고 높지 않고 ㄱ자 모양 ㄷ자 때로는 ㅁ자 일수도 있죠. 이렇게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기에, 실무적인 일을 처리하기에 편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재, 헌 인데요. 재, 헌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 그 가운데서도 재는 분위기가 조용하고 차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학자들이 학문 연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집들에 재자를 많이 붙이구요. 혹은 여성들이 얌전히 생활하는, 차분한, 조용한, 다소 은밀한, 내밀한 건물들에는 재자를 많이 붙입니다. 그에 반해서 헌이라는 글자는 정확하게 얘기하면 마루입니다. 마루 헌, 마당을 내다볼 수 있는 마루로, 방과 통하는 마루인데, 마루만을 가리키지 않고 집 전체를 가리켜서 헌자가 붙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헌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무를 처리하거나 회의를 하거나 강학, 공부, 강의를 하는 건물, 그런 용도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관념적으로 흔히 생각하는 하는 것이 사또의 동헌, ‘동헌에 나신 사또가 무슨 일을 처리했다’고 말할 때 지방관이 근무하는 공간, 건물을 동헌이라고 부르는 데서도 그 예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나 헌을 붙여서 건물의 주인의 아호, 그 주인을 부르는 명칭으로 쓰는 경우가 많죠. 물론 재, 헌 만이 아니라 당 이하 여러 글자들도 그렇게 부르는데, 가장 많은 것이 재, 헌입니다. 이를테면 역사학자 중에서 단재 신채호, 무슨 무슨 헌자 붙은 인물들이 많이 있는데요. 바로 이런 건물에서부터 이름을 따와서 호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 당, 합, 각, 재, 헌의 여덟 글자 가운데 제일 마지막이 누와 정입니다. 누정이라는 말을 아예 붙여서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라는 공간은 경회루, 광한루에서 보시다시피바닥에서 부터 계단을 밝고 올라가는 상당한 높이의 바닥(밑면)이 마무로 깔려 있는 공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높이 올라가는 마루에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기 위한 건물에 누자가 붙은 것이구요. 또한 건물의 어느 한 부분인 경우 일부에만 마루로 되어 있는다락이라고 할 때 다락을 가리켜서 누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 건물의 일부인 다락인 주변 경관을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서늘하게 여름에 쓰기도 하고, 아니면 시원하고, 건조하게 무언가 보관해야 될 것, 대표적인 것인 한지로 만들어진 책이라든지, 술이라든지, 꿀이라든지, 변질되기 쉬운 것을 보관하는 곳, 다락방 이것을 누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또한 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치가 좋은 데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닷가, 산등성이, 계곡, 연못 주변에 있어서 주변 경치를 완상, 감상하면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휴식과 함께 회합을 하는 심각하는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자리, 공간으로 쓰기 위한 작은 건물, 경치 좋은 곳에 주변이 잘 보이도록 벽이 기본적으로 막혀 있지 않은 작은 건물을 정이라고 합니다.

전, 당, 합, 각, 재, 헌, 누, 정 이 여덟 글자를 잘 이해를 하시고 외우시면 어떤 건물을 보셨을 때 아니면 건물 이름만 들어도 그 건물이 대체적으로 어떠한 격을 갖고 있으며 외형은 어떠하며, 주인이 대게 어느 정도의 높이, 신분의 인물이며, 무슨 일을 했겠구나 하는 것을 가늠해 보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건물 명칭에 나타난 등급 질서 :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1. 전(殿): 임금과 왕비의 공식 활동 공간, 최고의 등급

-조정: 인정전 -대전: 강녕전 -중궁전: 교태전, 대조전, 통명전

2. 당(堂): 1등급의 건물. 임금과 왕비도 쓸 수 있으나, 세자 이하의 사람들은 당까지만 쓸 수 있다.

-중희당 -양화당

3. 합(閤), 각(閣): 전과 당 부근에서 이를 보필하는 기능으로 2등급의 건물, 합이 각보다 약간 위 등급으로 인식되며, 주로 여성들이 사용한다.

4. 합: 곤녕합, 제수합, 양심합

5. 각: 규장각

6. 재(齋), 헌(軒): 가장 일반적인 건물이며 실용적이다. 재는 조용한 분위기여서 학자들의 학문연구나 여성들의 일상생활 공간에 많이 붙고, 헌은 여러 사람들의 모이는 공간에 많이 붙는다.

7. 누(樓): 계단을 통해 올라가게 되어 있는 높은 공간으로서 바닥이 마루로 되어 있다. 주위 경관을 감상하거나, 건물의 일부로서 마루방 또는 다락

8. 정(亭): 경치가 좋은 곳에 있어 그 경치를 즐기기 위한 작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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