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고향을 생각한다 - 김동길 교수

월명실 2014. 9. 23. 22:13

2014/09/08(월) - 고향을 생각한다 - (2322)

 

나는 아득한 옛날에 평안남도 맹산이라는 깊은 산골에 태어났습니다. 평양서 북창까지 기차를 타고, 호랑이가 나온다는 소리개 고개 30리를 걸어서 넘어야 내가 태어난 원남면이라는 벽촌에 도달합니다. 나의 아버님은 그 마을의 면장이었습니다.

다섯 살 쯤 되었을 때 아버님이 시작하신 광산이 되질 않아 집안 살림이 어려웠습니다. 살 길이 막연한, 나의 어머님은 어린 우리들의 손목을 잡고 평양이라는 큰 도시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거기서 나는 초중고에 다녔고 거기서 나는 해방을 맞았으므로 평양은 나의 제 2의 고향입니다. 월남한 뒤에는 줄곧 서울에 살았으므로 서울은 나의 제 3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뚜렷한 고장이 없습니다. 추석 연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다는데 나는 ‘고향’하면 모란봉과 대동강을 연상할 뿐입니다. 거기에 나의 젊은 날의 꿈이 서리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하에는 독립운동 하신다는 분들을 ‘사상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이 오랜 감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셨다는데 그 어른의 이름이 ‘안동혁’이었습니다. 그 분이 평양고보 학생들을 몇 모아놓고, 우리 역사와 시를 몰래 가르쳤습니다. 소학교 학생이던 나는 그 틈에 끼어서 뜻도 모르는 시를 암송하였는데 그 시의 참뜻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왕검성에 달이 뜨면 옛날이 그리워라
영명사 우는 종은 무상을 말합니다
흥망성쇠 그지없다 낙랑의 옛 자취
만고풍상 비바람에 사라져 버렸네

패수야 푸른 물에 이천년 꿈이 자고
용악산 봉화불도 꺼진지 오랩니다
능라도 버들사이 정든 자취 간 곳 없고
금수산 오르나니 흰 옷도 드물어라

우뚝 솟은 모란봉도 옛 모양 아니어든
흐르는 백운탄이라 옛 태돈들 있으랴
단군전에 두견 울고 기자묘에 밤비 오면
옛날도 그리워라 추억도 쓰립니다

남들이 다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는다는 오늘 아침에 나는 홀로 이 망향가를 읊조리며 을밀대와 만수대가 그리워 눈물집니다. 어머님이 안 계신 고향을 이제 찾아서 무엇하리오!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