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기구한 인생 서사시

월명실 2014. 7. 14. 19:35

기구한 인생 서사시

 

-밤의 길이 1,300 m

 

綠苑 李 文 浩

       

       

       

      여학생 따라다니다 예수를

       

      1943년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학년마다 두 학급이 있었고

      나는 5학년 1학기까지 줄곧 1등을 했었다

      5학년 2학기 때 전학 온 한 여학생

      내 5년간 쌓아 온 일등의 아성을 무너뜨렸으므로

      어떻게 공부를 하는가 엿보기로 했다

       

      새벽 다섯 시 교회로 가는 그를 뒤쫓아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보며 듣고 익힌 찬송

      “성령이여 강림하사...” 지금도 은혜롭다

      그렇게 예수도 만나고 여자친구도 생기고

      하지 않던 새벽 공부를 하여 일등도 되찾았다

       

      중학은 그와 나 둘만이 갈 수 있었고

      넉 달만의 첫 방학 때 그와의 만남은

      서먹서먹하게 교회에서 몇 번 만났을 뿐

      그 후

      겨울 방학이 지나고 2학년이 되고 해방이 되고

      그는 나에게 예수를 맡기고 훌쩍 남한으로 떠났다

       

       

      사람의 종류

       

      1947년 겨울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겨울이 되면 수풍에도 별로 놀 곳이 없었다

      다행히 좋은 빙판이 있어서

      너 나 할 것 없이 쟝께를 둘러메고 빙판으로 간다

       

      쟝께란 대장간에서 만든 스케이트의 일종이다

      내 친구 셋이 같이 배우기 시작했는데

      넘어질 때 보면 참 재미있었다

       

      일환이란 놈은 넘어지기 전에 “아얏”했고

      광조는 넘어지고 나서 트랙을 두어 바퀴 돌다

      “아이고 엉덩이야”하고 비벼댄다

       

      그런가 하면 나는

      주로 앞으로 넘어지며 손을 짚었고

      혹 엉덩이를 찔 때는 그 순간 아픔을 호소했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으로

      각각의 인생길에 접어들었다

       

       

      해방

       

      1945년8월15일

       

      大 미국을 공격하며

      동 아세아를 제패하고

      도도하던

      일본 ‘천황폐하’의 울음 섞인 항복서 낭독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으랴

      바위에 깨어질 줄 모르고 부딪쳤던 계란의 눈물

       

      간간이 들려오던 조선 독립군 이야기

      그들이 쟁취해서 얻은 줄 알았던 독립

      연합군 승리로 ‘줏은 해방’

       

       

      어정쩡한 만세 행렬

       

      1945년 8월

       

      수풍 댐이 있는 이곳엔

      일본군 44부대 일부가 있었다

       

      조선독립이 되었다는 팔월 십오일 이후 한참 동안

      일본군과 그의 헌병들은 그대로 있었고

      그들 앞에서 그저 형식적인 “독립만세”를 불렀다

      억눌렀던 자 앞에

      눈치 보며 부르던 독립만세

       

      <!십 여일 후 ‘로스께’가 들어오고

      일본인을 한 건물에 집결 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압수하고 악질 앞잡이들을 폭행하며

      본격적인 독립 만세의 기세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내 나라가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로스께: 소련군을 그렇게 불렀다

       

       

      2

       

      로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를

       

      1947년 9월

       

      학교 영어시간이 없어지고 로어 시간이 됐다

      교재는 ‘니나뽀다뽀아’라는

      한국어로 번역된 영국인이 로어를 배우는 책

       

      나는 우연이 그 원본을 구했다

      영어를 먼저 해석해야 로어를 알게 되므로

      영어 단어부터 모조리 외었다

      그리고 해석은 번역판을 보았다

      남의 2배 3배의 노력을 하였다

       

       

      가끔 로어와 영어를 혼동해서 웃길 때도 있었다

      하루는 영어선생님이 영어시간이 없어졌으므로

      사직하고 가면서 흑판에

      ‘Go slowly and steady!’라고 써놓고 나갔다

       

       

      다음시간에 들어온 로어선생이

      ‘G’자가 로어로는 ‘ㄷ’로 발음 되므로

      “도 슬로리 앤드 스테디”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어찌 되였거나 나는 영어 단어를 무척 많이 익혔다

       

       

      아오지 탄광 문턱

       

      1948년 중순

       

      색깔 다른 친구들 셋이 사진을 찍고

      “Our image is like the sun”이라고

      넣은 것이 화근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부친이 과거 군수를 지낸 자제 분인 선생에게

      호출 받은 세 사람

      교무실이 아닌 교실로 불려 들어가니

      석장 밖에 없어야 할 예의 사진을 꺼내 놓으며

      “미친놈들 뜻이 맞으면 맞았지 왜 이런 글을 넣어하며 호통을

      치고 찢어버리고 나간다

       

      알고 보니 사진사가 이상한 글을 사진에 넣었다고

      신고를 한 것이 다행히 교양주임이 아닌

      성분이 좋지 않은 선생에게 사진을 주어서

      우리에게 경고만하고 찢어 버린 것이다

       

      그것이 교양주임에게 주어졌던들

      아오지 탄광 행이었을 아찔한 사건이었다

       

       

      젊은 그때

       

      고향 떠난 반세기 추억의 강가

      찰랑대는 수면에 작은 바위 하나

      의연히 지킨 그 자리

       

      맴돌며 쉬어가는 이곳엔

      예전 그대로 물고기들 한가하네

       

      눈 감고 더듬은 추억의 끝자락엔

      뒤늦게 내 마음 끌어안고 달려오는

      그 때 그 소녀의 옷고름이 팔락인다

       

      노구의 그날의 젊은이

      일렁이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서녘 산마루엔 지는 노을 아름답다

       

       

      國章 안의 똥

       

      1947년 여름

       

      수풍 전기전문학교는 발전소가 있어 생긴 학교

      학생들 실습은 당연히 발전소 안이었다

      전에도 기술한 대로 발전기가 세워져 있으므로

      水車실은 댐의 제일 밑,

      발전기 교육의 첫 단계는 이 수차 실에서 시작되었다

       

      수차 실은 프로펠러만 도는 곳이라 어두웠고

      인적도 드물어 한 학생 생리가 급해 슬쩍 실례

       

      며칠 후 실습장에 도착한 학생을 모아놓고

      직맹 위원장 서슬이 퍼렇게

      “여기는 인민공화국의 國章이요, 이 안에

      똥을 싼 놈이 있으니 당장 자수하시오”

      하고 불호령

       

      학생 수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한 학생이 자수했고

      자아비판을 호되게 했다

       

      *國章(국장): 국가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댐을 비스듬히 사진

      찍고 벼 이삭으로 두른 그림

       

       

      수풍 발전소 (1)

       

      1941년 8월

       

      일본의 한 지도연구사가

      1930 년 초 한국지도에서 수풍 지역을 연구하다

      토목 기술자에게 발전소자리로 일본에서

      가장 좋은 자리라고 알려주었고

      그 기술자의 제의로 1937년부터 공사가 시작 되었다

       

      큰 난관 없이 1941년 8월 26일 준공 발전 개시

      최초 계획은 독일 지멘스 제로 40만 킬로 왓트

      일본 시비우라 제로 30만 킬로 왓트

      계 70만 킬로 왓트를 생산

      중국에 50헬츠로 20만 킬로 왓트

      한국에 60헬츠로 50만 킬로 왓트로

      송전하게 되어있었다

       

      독일 지멘스제 한 대는 수송도중 침몰해서

      수풍 발전소의 총 발전량은 60만 킬로 왓트이나

      당시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발전량

      댐도 두 번째로 높고 큰 발전소로

      일본은 세계에 기술 대국임을 과시하며

      만주와 조선을 그들의 군수 기지화하기 시작했다

       

       

      수풍 발전소 (2)

       

      1941년 8월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70만 킬로 왓트의 전력량을발전하기 위한

      땜은 105미터 높이 호수둘레 1,074 킬로미터 저수량 116억 톤

      세계제일의 인공호수를 이르고 그 물은 165 킬로미터 위인 위원

      까지 달했고 수개화차 분의 새끼 물고기를 투입 양식했다

       

      이 댐의 높이는 이 지역의 최대 강수량을 고려

      7대의 발전기를 전 가동했을 때에도

      물을 넘기지 않도록 계획했고

      여유로 중국 측에 바이패스 터널을 만들어

      홍수 시 물과 뗏목을 하류로 보내게 했다

       

      회전축이 세로로 되여 있는 발전기였으므로

      배전반실에서 발전 실을 내려다보면

      우뚝우뚝 솟은 발전기들이 장관을 이루었고

      마지막 여섯 번째 발전기는 마치 조그마한

      팽이를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았다

       

      ▲ 수풍발전소(김일성과 외빈, 1958) 국가기록원 제공


       

       

      고기잡이 백태

       

      1947년 여름

       

      전에도 기술한 바 있지만

      그 넓은 호에 많은 어종의 새끼를 기차로

      몇 차를 쏟아 부어서 47년에는

      제법 큰 물고기들로 성장해 있었다

       

      호수에 도마궁이를 타고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여

      물에 던지면 고기들이 먹이인줄 알고 모여든다

      이때에 터지게끔 심지를 조정하는데

      너무 길면 모였다 헤친 다음에 터지며

      짧으면 물위에서 터져 물고기는커녕 인명이 위험하다

       

      1947 년에는 가물어서

      물이 얼마 없는데다 발전기 점검으로

      댐 하류로 흘릴 물이 없어서 댐 밑에 물이 말랐다

      그러므로 걸어서 중국에 갈 수 있기도 했지만

      강바닥 웅덩이 마다 크고 작은 물고기가 가득했다

      먼저 가서 주워 넣으면 되었는데

      큰 것은 몽둥이나 톱 같은 것으로 때려잡아야 했다

      주로 잉어 뱀장어 게 조개 그리고 이름 모를 고기들을 잡을 수 있었다

       

      또 발전을 하고 나온 물은 97미터 밑의 물이였으므로 수온은 한 여름이라도 정확히 4도였다

      댐 밑에서 자라는 장어새끼는 낮이 되면

      추워서 따뜻한 댐 면에 새까맣게 올라붙는다

       

       

      새벽에 댐 벽에 넓고 긴 포장을 처 놓고

      장어가 올라붙은 후에 포장을 움직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어새끼가 포장에 떨어진다

      이렇게 한번 잡으면 몇 가마니가 되며

      말려서 농협으로 보내져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장마가 저서 물이 넘쳐흐르면(over-flow)

      물고기들이 일백 미터 댐 위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고 떠도는데 이때 도마궁이를 타고 들어가

      도끼나 몽둥이로 때려서 끌고 오는데

      만일 살아나면 배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

      인명을 위협할 때도 있다

      이런 때에 잡히는 물고기는 커서 뱃속에서 사람의 손가락이나

      금반지를 낀 손가락이 나올 때도 있었다

       

       

      도둑맞은 발전기

       

      1948년

       

      십만 킬로 왓트 발전기 7대를 설치하게끔 설계 시공되였으나 일곱

      대 중 여섯 대는 일본 “토시바”제이고 한 대는 독일에서 수입키로

      되어 있었으나 수송도중 침몰하여 석 대의 발전기가 서 있는

      발전기실은 이라기보다 굴뚝이 즐비한 항공모함 같이 그 위용은 보기만 해도 장대하였다

       

       

      1948년 거의 일년 동안

      우리의 현장 실습이 중단 되고

      교실 내 교육이 계속 되었다

      현장 실습이 많아 실력이 떨어졌다는 이유였다

       

      연말께 되어 실습차 발전소에 들어간 우리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빨 빠진 어린이 입은 귀엽기나 하려니와

      독일제 발전기 두 대가 쑥 빠져버린 광경을 본

      학생들의 마음은 분노에 끓었고 눈시울은 젖었다

      나사 하나까지 떼어다 그대로 설치 사용하기 위한

      소련의 전승자로서의 전리품이 되었다

       

       

      에이프론 공사

       

      1948년

       

      당초 계획대로 7대의 발전기로 풀가동하면

      장마에도 물을 댐으로 넘길 필요가 없었는데

      한 대의 미설치, 강 건너 중국에 장개석 군이 점령

      그리고 남한에서 해방으로부터 48년까지의 전기 이용료 (약 400만

       달러)의 미지급에 겹쳐서 5월 10일 선거 후 정부수립을 선언함로서 남한으로의 송전을 중단하게 되었다

      결국 북한용으로 1대만 발전함으로서 평년 수준의 장마에도 불구하고 물을 댐 위로 넘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댐 밑의 콘크리트 블럭이 깨지고 굴러가서

      댐이 위태롭게 되자 전국의 각 가정에서 한 사람씩

      동원령이 내려져 보강 공사를 하게 되었다

      “제국주의자들이 장기 예측을 못했다”고

      그들은 선전을 빼놓지 않았다

       

       

      첫 교육

       

      1950년 2월 3일

       

      1월 임명과 동시에 담당할 과목을 배당 받았고

      3학기 시작인 2월 첫 교육에 임했다

      학생들이래야 모두 한 달 전까지 같이 뛰놀던 친구들

       

      그래도 오늘은 교사로서의 위엄을 갖춰야 했고

      교과 내용도 충실해야 하고 교육방법도 좋아야 했다

      한 시간이 끝날 무렵 중점을 강조하고

      인지도를 살피니 반은 알겠다는 얼굴이고

      반은 알쏭달쏭한 얼굴들 이었다

       

       

      확인하려고 학생들을 둘러보니

      한 여학생 자신 있다는 표정

      그는 가르친 것 이상 잘 대답을 했다

      안심이었다

      첫 날 첫 시간은 이렇게 성공리에 끝났다

       

      그 후 몇 번 그 여학생에게

      강의의 결과를 확인 하였더니

      소문이 났다

      어느 선생이 누구를 좋아한다고

       

       

      전문학교 교사가 되다

       

      1950년 1월 1일

       

      수풍 전기전문학교는

      해방 후

      일본인 초등학생이 사용하던 교실을 이용

      발전소를 운용하던 일본인 기술자가

      주로 가르치다가 1949년 말

      일본교사를 모두 해직하고

      이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 중에서

      충원하여 교육을 계속했다

       

      제1회 졸업생(1949년 7월)에서 1명

      제2회 졸업생에서 2명(1949년12월)을

      충원했고 2회 졸업생인 나는

      약관 19세에 교사 임명장을 받고 이듬해

      1950 년 1월 3일부로 부임했다

       

      학생은 신의주 제일공업학교 재학 중인 학생과

      각 학교에서 모집한 학생들이었으며

      남녀공학이었고 연령층은 매우 넓었다

       

       

      짝사랑하던 시절

       

      내 나이 열여덟일 때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얼굴 붉혔네

       

      감은 눈 속에 그대 그리면

      정열의 피 가슴을 떨리게 했네

       

      나 그대 입술 맛 몰라

      달 것이라고 내 입술 부르트도록

      빨았었네

       

      떨리던 가슴

      붉어지던 얼굴

      부르텄던 입술

       

      달에 토끼도 계수나무도 자라던

      짝사랑 그 시절

     

    '생활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교한 나무조각작품  (0) 2014.07.27
    기구한 인생사  (0) 2014.07.14
    실천해야 할 삶의지혜 27  (0) 2014.07.03
    유리 예술(Glass Art)   (0) 2014.06.14
    환상의 도자기  (0) 2014.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