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문화재

효령동의 지명유래

월명실 2013. 6. 15. 09:47

 

[효령동 - 지명유래]

유래
효령동 전경

효령동 전경

본래 광주군(光州郡) 우치면(牛峙面) 지역으로서, 효재 또는 효령으로 변하여 소재 또는 우치(牛峙)라 하였는데, 1914년에는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촌리, 학동리, 승평리, 우곡리, 봉황동리, 종방리, 수곡리, 서작리의 각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효령리라 하였다.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되어 리(里)를 동(洞)으로 고치고, 1957년 동제 실시에 따라 우치동회의 관할이 되었고 1998년 9월 21일 건국동의 관할이 되었다.
효령동에는 바닥이 깊숙하고 물길이 좋아 기름지다는 뜻의 고래실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논이 있다. 이 부근에는 으뜸마을인 학동을 비롯하여 신촌, 정재동, 종방, 우곡, 방죽동네가 있다. 학동 남쪽에는 황새형국의 황새봉을 향해 깊게 패여있는 골짜기 점불이 있고 학동 동북쪽에는 쑥대봉이, 동남쪽에는 감나무가 많은 감남골이 있다.
옛날에는 영산강 물이 마을까지 들어왔으며 배도 드나들었다고 하며, 이곳은 전통적인 씨족형태의 마을로서 행주 기씨와 전주 이씨 집성촌이었다.

소지명
  • 방죽 : 종방 뒤에 있는 마을. 방죽을 메운 자리가 마을이 되었음.
  • 방죽안, 종방리 → 종방
  • 소재, 우치, 효령, 효재 → 효령동
  • 신촌 : 종방 동쪽에 새로 된 마을.
  • 정채동 = 정차동, 정차골, 정챗골 : 학동 동쪽에 있는 마을.
  • 종방 = 종방리, 방죽안 : 학동 북쪽에 있는 마을. 방죽 안쪽이 됨
  • 학동 = 학동리 : 효령동에서 으뜸가는 마을
  • 학동리 → 학동

 

[효령동 - 유물유적]

기타

* 기성인 물침절목(奇姓人 勿侵節目)

12폭 병풍으로 현종 6년에 하사받은 것으로써 <기씨성을 가진 자는 군사에 적(?)을 두지 말 것이며, 군교의 일로 침해치 말 것이며, 풍약리(風約里)의 임무로 침해치 말 것이며, 연역(烟役)의 일로 침해치 말라>는 내용을 가진 일종의 조정 명령서이다.

효령동 학동마을

효령동 장열사 유서비

<효령동 장열사 유서비>


○ 장열사유허비(壯烈祠遺墟碑)

효령동 우곡마을 635-1번지, 1975년
1850년 효령동 죽방동에 건립된 장열사(壯烈詞 : 김유신, 김일손, 김광립을 모신 사우)가 1868년 대원군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고 그 자리에 이용원(李容元)이 장열사유허비를 세웠다.

○ 삼산구노유적비(三山九老遺蹟碑)

령동 신촌마을, 1969년
수곡, 신촌, 학동, 종방, 우곡, 학림, 단지등 효령동 인근마을에 거주하는 9명의 촌로들이 결성한 계(삼산구노계)의 기적비로 마을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정사
효령동 삼산정사

<효령동 삼산정사>


○ 삼산정사(三山精舍)

삼산정사(三山精舍) : 효령동 종방마을 산 189번지, 1963년
삼산정사(三山精舍)는 효령동 종방마을 내에 위치해 있으며, 건물은 콘크리트 기단 위에 4개의 신발돌과 다듬어진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변주를 세워 정면 4칸, 측면 1칸의 일식기와로 된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三山精舍 上樑文三山精舍記 原韻 次韻(삼산정사 상량문삼산정사기 원운 차운)>등 모두 11개의 제액(題額)이 걸려있다.






효령동 우산정사

<효령동 우산정사>

○ 효령동 우산정사

효령동 종방마을, 시대 미상
우산정사(牛山精舍)는 우산리(牛山里)라 불리는 곳으로 행주기씨송은공(幸州奇氏松隱公) 기정륜(奇?崙)의 강학지소(講學之所)로서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이 청백전가(淸白傳家)의 액호(額號)를 써 주었다. 이곳에는 송은공의 8대손 기세국(奇世國)의 소기(小記)와 기동준(奇東準)의 기(記) 및 후손들의 시(詩)가 있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 건물이다.

재각

* 행주기씨사당(幸州奇氏祠堂) : 효령동 346(종방마을길 54), 1978년

행주 기씨 사당은 효령동 종방 마을내에 위치해 있으며 1978년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좌우로 방풍막이 설치되어 있다. 전면에는 콘크리트기단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우고 창방 소로 장혀를 가구하여 굴도리를 올렸으며 내부는 마루로 되어 있다. 다른 제실처럼 전형적인 한옥형태를 위한 5량집으로 되어있다. 전퇴에는 마루가 놓여있으며 인방에는 머름대로 둘러 장식하였다. 좌우벽은 회반죽마감을 하였고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다. 상량문에 있는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291년 술오(戌午)년 3월 20일 안초(安礎)로 보아 근대에 건립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제일(祭日)은 음력 8월 15일과 정월 2차례 지낸다. 담장이나 대문은 없다.

효령동 모선사

<효령동 모선사>

○ 모선사(慕先祠)

효령동 학동마을, 1990년

기세준씨 개인 사당(4대봉사)으로 초하루, 보름, 기제에 제를 지낸다.

○ 영사재

영사재(永思齋) : 효령동 학동마을 181(효령학동길 44), 1960년

영사재(永思齋)는 효령동 후사면 학동마을에 위치해 있는 전주 이씨 재실이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일식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기단은 콘크리트기단으로서 그 위에 다듬어진 주초를 놓고 평주를 세웠으며 창방 소로 장혀 도리를 갖춘 5량 집이다. 마루는 귀틀에 의한 툇마루이며 내부는 중앙에 대청과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한 전형적인 한옥 건물이며 천정은 대들보와 그 위에 종보를 걸치고 좌우에 사다리꼴 중앙에 원형 대공을 받치고 도리를 올렸다. 창호는 들쇠가 달려 있고 좌우 퇴칸은 분합문 중앙 어칸은 4분합문으로 되어 있으며 모두 띠살창이다. 대문은 벽돌 담장을 쌓아 잇대어져 있으며 평문으로 되어 있다.
제실(祭室) 우측에 <有明朝鮮 贈嘉善大夫戶曹參判全州李公諱昌烈之墓 : 유명조선 증가선대부호조참판전주이공휘창열지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지야동 - 민속문화]

당산제
효령동 우곡마을 당산나무

효령동 우곡마을 당산나무


1) 우곡마을 당산나무 : 수령 200여 년

우곡마을은 죽지봉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말단부와 영산강 주변에 위치한 조그마한 마을로 농업에 종사한다. 이 마을의 당산은 마을 입구에 공동샘과 당산나무가 있어 이곳에서 정월 보름이면 제물(祭物)을 차려놓고 굿을 쳤다고 하나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지금은 마을사람들이 모여 담소도 즐기고 일거리를 가지고 나와 일을 하는 장소가 되었다. 당산나무의 수종은 팽나무이며, 수령은 200여 년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보 : 기금순 (73세), 효령동 우곡마을 729번지



효령동 신천마을 당산나무

효령동 신천마을 당산나무

2) 효령동 신천마을 당산나무 : 효령동 256번지, 300여 년

당산제는 옛날부터 없었고 당산나무의 수종은 느티나무이며 높이는 18m, 둘레는 5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