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들과 안분자족(安分自足)
독일 사람들과 안분자족(安分自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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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30대 후반일 때 산업은행 조사부에서 일했는데, 서독의 ‘도이체 방크(Deutsche Bank)’에서 업무연수를 받을 기회를 얻었다. 여섯 달 일정이었는데, 처음 간 곳은 서독 남서부의 작은 도시 팟사우(Passau). 여기 ‘괴테 학원’에서 두 달 간 독일어를 익히면서 이 나라에 관한 개괄적인 공부를 하였다. 이어 이 은행의 본점 세 곳인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그리고 뒤셀도르프에서 남은 기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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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체방크'는 1870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꽤나 오래다. 당초에는 독일 기업들의 대외무역을 지원하기 위한 특수은행으로 출범했는데, 나중에는 자본참여, 또는 M&A(인수 합병)방법으로 세계 각처로 진출, ‘글로벌 뱅킹 그룹’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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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라고는 해도 누가 옆에 붙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는 것도 아니어서, 각 부서에 며칠씩 머물면서 눈치껏 보고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여기서 은행업무의 전산화 현장을 처음 보았다. 강당만큼 너른 어느 방에 수십 명의 여직원들이 기계 한 대에 한 사람씩 가지런히 앉아 손길을 바쁘게 움직이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이것은 카드에 ‘펀칭’을 하여 전산자료를 입력하는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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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독일은행의 업무 전산화의 정도는 총체적이 아닌, 부분적이었던 것 같다. 서독의 전산화 율은 일본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여기에는 독일 국민의 보수적인 일면이 작용한 것 같다. 경쟁력의 유지를 위해 자동화, 또는 전산화가 필요한 부분은 그렇게 해 가고 있지만, 가능한 한 인력을 많이 써서 고용기회를 넓히는 데에 관심을 더 두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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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사용 면에서도 이런 점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은 총에너지 중에서 석유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독일(당시는 서독)은 석탄의 비중이 여전히 컸다. 자국산 석탄을 최대한 사용함으로써 일자리를 더 늘리려는 배려인 것 같았다. 그들도 석유 에너지가 효율이 높고 쓰기 편리함을 왜 모르겠는가! 스스로의 처지를 알아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좋다고 해서 한쪽으로 휩쓸리지 않는 그들의 정책적 노력에 나는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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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일본보다는 월등 오래고, 그런 만큼 노동조합의 세력이 사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능률보다는 고용 안정이 우선적인 과제로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이런 면에서는 서독보다는 자유로운 입장이었던 것 같다. 일본에도 물론 노조는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그것은 이른바 ‘일본주식회사’의 발전에 기여하는 쪽이었지, 그것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의 노동운동은 질 · 량 양면에서 독일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연성(軟性)이어서, 그만큼 일본경제는 운신의 폭이 더 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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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한, 독일이란 나라는 그 사회의 짜임새가 무척 탄탄해 보였다. 젊은이들의 대학 진학문제만 하더라도 덮어놓고 대학에 들어가고 보려는 우리네와는 발상이 달랐다. 학생의 성적을 보아 대학 진학이 ‘무리’라는 판단이 나오면, 학교 당국은 그 학생이 직업고등학교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며, 부모와 학생은 여기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대학 진학이 우리나라처럼 ‘지상(至上)의 과제’가 아닌 것이다. 직업고등학교만 나와도 그에 알맞은 직장이 예비 되어 있다. 자질과 능력이 있으면 대학으로 진학하지만, 그렇지 않은 터에 무엇 때문에 학문이라는 어렵고 힘 드는 길에 들어설 것인가, 하는 것이 독일 젊은이들 다수의 생각인 것 같았다.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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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사우에서 내가 기숙하던 집주인 티펜뵉 씨의 아들의 경우도 그 한 예이다. 어느 주말 오후, 주인 측의 초청이 있어 교외에 있는 그의 살림집을 방문했다. 알고 보니 그 집 아들이 경찰전문학교에 입학한 것을 자축하는 모임이었다. 당자는 물론, 가족 모두가 환하고 밝은 얼굴들이고, 나 같은 이방인까지 초청하는 것을 보면 아주 즐거운 ‘파티’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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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이란 사회에서 경찰학교 입학이 어느 정도의 성취 수준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대학 입학이 아니면 일단 ‘실패’로 간주하고 마는 우리네 사회의 통념을 떠올리면서 나는 속으로, ‘이상한 사람들도 다 있구나. 경찰학교에 입학한 정도로 이렇게 야단을 떨다니!’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독단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 ․ 분수에 맞게 장래를 예비한다. 그들은 안분자족을 알고, 그것을 실천해 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바로 보고 실질에서 해답을 구하는 태도. 이것은 바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며, 이런 자세가 보편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안정된 사회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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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제 자질과 능력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대학에 진학하려는 풍조가 여태 만연해 있다. 이로 해서 대학진학률이 80%를 넘는다는 밝은 면이 있는 반면, 청년 백수라는 어두운 면이 점점 커가고 있는 것이다. 4년여라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도 바로 일자리로 연결되지 못하고 한참 동안 고급 실업자(失業者)로 방황을 해야 하니, 이것은 사회적으로 여간 낭비가 아니다.
만일 어느 고교 졸업생에게 담임이 “너는 대학 진학보다는 바로 취업을 하라”고 권하면 그 학생은 물론이고 그 학부모가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근거 없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그에 따라 진로를 정함이 보다 합리적이고 실익 또한 따를 것이다. 요컨대 안분자족을 알고 이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이것이 사회적인 통념으로 정착하여 선진화의 한 표상으로 될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