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무대 위에서 살아온 나의 인생 -김동길 교수

월명실 2016. 1. 14. 23:39

2015/06/13(토) - 무대 위에서 살아온 나의 인생 - (2600)

 

평안남도 평원군 영유읍에 있는 괴천공립국민학교에 촉탁교사로 부임하여 3학년 담임이 된 것은 아직도 일제하이던 1945년 4월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 때 내 반의 학생 수는 한 40명쯤 되었던 것 같은데 그 교실의 넓지도 않은 작은 교단이 나의 첫 무대였습니다.

중‧고등학교의 교단에도 서 보았고 1955년부터는 대학의 강단을 무대로 삼고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으니 나의 삶이 그 무대가 없었으면 설 자리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1985년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내걸었던 나의 <서양문화사> 9월 학기 강의에는 무려 2,300명이 등록을 하였으므로 그 강의는 대강당에서 조교 10여명을 거느리고 실시한 적도 있었으니 그때에는 나의 무대도 넓었고 ‘관객’도 어지간히 많았습니다.

서울구치소나 안양교도소의 독방에서도 한참 살았지만 그 무렵에는 나의 처지에 동정하는 선량한 시민들(관객들)이 많아서 나는 결코 외롭지 않았습니다. 1평도 안 되는 좁은 감방이 나의 무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옥한 뒤에도 나만큼 많은 강연을 하며 전국을 누빈 ‘연사’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무대체질’의 인간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인간과 삶에는 깊이가 없음을 고백하는 동시에 깊이 뉘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이 늙은 ‘나’를 향해 “참 못난 인간이군요”하며 침을 뱉아도 나는 “지당한 말씀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이 고얀 놈!”하며 욕을 해도 나는 대들 수가 없고 내심으로 오히려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직도 TV의 무대 위에서 3막 3장인 나의 인생의 마지막 3장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내 나이 90이 다 되었습니다. 나의 인생의 마지막 막이 내려질 시간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실패작인 줄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섰는 한 늙은 배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