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큰일은 뒤로 미루고-김동길 교수 월명실 2014. 12. 29. 21:34 ◆2014/11/29(토) -큰일은 뒤로 미루고- (2404) 작은 일부터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젊어서는 작은 일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쩨쩨하기만 느껴진 반면에 큰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전통적 가르침을 비웃었습니다. 자기 몸을 다스리고 집안을 정돈하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다 쏟으면 나라를 바로 잡는 일은 할 수 없다는 논리를 가지고, ‘거짓된 젊은 날’(‘The lying days of my youth’ -W.B. Yeats)을 보냈습니다.이젠 나도 늙었습니다. 남은 날들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내가 한평생 추구한 것은 조국의 자유민주주의 -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 ‘큰 뜻’을 품고 38선을 넘어 월남하였고 대학에 다니면서 문학과 역사와 철학과 종교를 공부하였고, 그 외길을 달려 여기까지 왔지만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는 빈 털털이로 노년을 맞았습니다. 남기고 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고향을 버리고 낯선 땅을 찾아온 지 어언 70년이 됩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며 후회는 안합니다. 그러나 ‘개공’(皆空)입니다. 겸사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지나간 70년이 이제 와보니 다만 물거품입니다. 한반도의 민주화는 아득하기만 합니다. 큰일은 한 것도 없으면서 아들, 딸을 낳아서 키우는 평범한 일을 하지도 않았습니다.정직하게 하루하루를 살면서 가까운 소수의 사람들을 사랑하며, 되도록 ‘애국’이니 ‘세계 평화’니 하는 거창한 꿈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나 이제 시들어 진리가 될건가”(Now I may wither into the truth) - 이것도 Yeats가 한 말입니다. 나는 다만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고대할 뿐입니다.김동길www.kimdonggill.com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