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 해설자료(가사문화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환벽당을 찾아주신 관광객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이곳을 소개하게 된 가사문화권 역사·문화 해설사 박금서입니다.
광주호 상류 창계천의 충효동 언덕 위에 높다랗게 자리잡은 명승 제 107호로 지정된 환벽당은 조선시대 때 나주목사 김윤제가 을사사화라는 정치적 환란을 겪으면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건물을 세우고, 노년에 후학을 지도할 목적으로 세운 정자입니다.
전에는 ‘벽간당’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사촌 김윤제 선생은 광주 김씨로 자는 공로, 호는 사촌으로 1501년(연산군 7년)에 출생하시어 1572년(선조 5년) 72세를 일기로 작고하셨으며 32세의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13개 고을지방관을 역임하시고
제자로 송강 정철과 서하당 김성원 등을 가르친바 있고 사촌선생이 송강 정철을 이곳에서 처음 만난 곳으로 송강이 벼슬에 나가기 전인 27세까지 이곳 환벽당에서 학문을 닦은바 있습니다.
환벽당 아래로는 조대(釣臺)와 용소(龍沼)가 있는데, 여기에는 김윤제와 정철에 얽힌 일화가 전해옵니다.
어느날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다 조대 앞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답니다. 꿈에서 깨어난 김윤제가 이상히 여겨 급히 그곳에 내려가 보니 용소에서 한 소년이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소년의 비범한 용모에 매혹되어 데려다가 제자로 삼고 외손녀와 결혼시켰는데, 그가 훗날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정철이었다고 전합니다.
환벽당의 누정형식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었으나 나중에 중건하면서 가운데 2칸은 방으로 앞쪽과 오른쪽은 마루로 바뀐바 있습니다
환벽당이란 당호는 영천자 신잠이 지었으며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와 임억령과 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도 걸려 있습니다.
환벽당 아래쪽엔 본체가 자리했으며 후원격으로 푸른 대나무가 둘려 쌓여 있다고 해서 환벽당이라 하며 본채와 후원 사이에 직사각형 연못이 있습니다.
무등산 자락과 지실 마을이 한 눈에 보이며 환벽용추, 쌍송조대, 벽오양월 등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많은 문인들의 시제에 오르내렸습니다.
면암정 송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소쇄 양산보 등 당대의 명사들의 교류 장소이기도 했으며 정철은 이들에게 학문을 사사 받은바 있으며 옛 선비의 그윽한 향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하서 김인후 선생이 환벽당과 관련지은 시를 소개할까 합니다.
저녘 연기 맑은 구름 서로 함께 어울리고
거문고 맑은 소리 물고기 떼 즐겨 노네.
노을 사양길에 술에 취해 돌아오니
모래가의 대밭 가마가 소리쳐 우는구나!
너무나도 애절한 시귀절이 아닌가 싶네요.
성현들의 당대의 모습을 느껴봅니다.
기회가 된다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되었으면 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